신앙은 지식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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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앙 댓글 0건 조회 1,157회 작성일 15-03-02 15:13본문
어릴 때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편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했다.
일단 내 편이거나 아군이면 안심되어 그 중심으로 얘기를 듣노라면 긴장을 갖게 때문이다. 괜히 적군이라 하면 불안해지고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싫었다.
어릴 때였기에 판단의 기준이 그것밖에 되질 않았기에 그렇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어도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군은 좋은 편이고 적군은 나쁜 편이다. 아군은 좋은 일만 하는 자들이고 적군은 나쁜 일을 하는 자들이다.
전형적인 흑백논리다. 이런 편견을 벗어버린 듯싶지만 여전히 우리는 갖고 있다. 아니 정보를 다양하게 갖고 있다고 해도 일단 편견을 갖게 되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또 어릴 때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쁜 자들이고, 일본인들은 무조건 나쁜 자들로 인식되었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은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말은 전적으로 옳고 바르지 않다. 이 세상에서 전적으로 무엇이 옳고 바른 편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어디엔가 속하고 싶은 우리는 이 우상에 빠져 살고 있다.
우리는 그리고 아군이라 할 때 미군과 영국군인을 말하고 적군이라 말할 때 독일군을 의미했다.
독하고 잔인한 독일군! 실제로 그들은 그렇다. 유태인 약 600만 명을 죽이는 것을 볼 때 그 표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근데 실제로 만나본 요즘에 와서 독일군들은 그렇지 않다. 사람과 국가가 다른 것인지 아니면 시대에 따라 달라서인지 몰라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아군의 대명사는 어떤가? 한국에서 저지르는 비행들은 나쁜 것이다. 자만심과 오만심에 가득 찬 자들이다.
용서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미군들을 그렇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판단은 애매모호하다. 이런 판단이나 저런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형편이다.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행동과 심리가 변한다. 대상에 따라 바뀐다. 우리의 정체성이다. 나 역시도 바뀐다. 변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지만 지상에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천상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영원불변하신 신과 인간으로서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그 모본을 보여주셨다. 그분을 믿는 신앙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이 신앙이 아니면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을 제대로 걸어가기 어렵다. 그분을 바라보지 않고는 제대로 살아가기 어렵다.
타락한 맨 정신가지고서는 이 세상을 제대로 아니 이기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분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물에 빠진 베드로처럼 허우적거린다.
그분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는 길 외에는 없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뜻을 자신의 삶에서, 지난 과거에 비춰보고 살피고 그분의 인자하심을 찾는 길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는 바로 세우거나 이끄는 길이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신앙이 이지적면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신앙은 지식과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