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헌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재정학경상남도의 ‘전면 무상급식’ 폐지 발표로 무상급식이 또다시 세간의 화제다.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무상급식을 중단하고, 그 돈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250% 이하인 가정의 초·중·고생 학력 향상과
교육비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경남도의 결정은 신선하다.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에 혹했다가 지난 2월 연말정산 결과를 보고 놀라며,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절감한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 아닐까. 다시 피켓이 난무하고 거친 단어들이 오가지만, 그 신선함을 무색하게 하기엔 역부족이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개인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다. 시간과 돈이 유한하니, 급한 일을 먼저 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뒤로 돌린다. 국가 재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금처럼 곳간이 휑한 상황에서는 더욱 꼼꼼히 따져보고 불요불급한 일은 미루거나 중지해야 한다. 이는 삼척동자도 알지만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경남도의 결단이 신선한 또 다른 이유다.
정부의 복지 지출은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늘어 왔으며, 최근 증가율은 다른 분야의 증가율을 훨씬 뛰어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턱없이 모자란다는 논리에 정치인이 올라타면서 ‘복지’라는 호랑이가 탄생하게 됐다. 효과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온갖 복지정책이 도입되게 된 중심에는 정치인과 공무원이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 먼저 나서서, 이것을 수정(修正)하겠다고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제 앞길만 살피는 형국이니, 경남도의
용기가 신선할 수밖에.
경남도의 결정은 돈을 안 쓰겠다는 것이 아니다. 무상급식을 중단해 생기는 돈으로 저소득층의 교육을 위해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개인의 평생 소득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교육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어린 나이에 교육받을 기회가 없어 저소득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기에 교육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에는 이견이 없다. 우리 부모들이 배고픔을 참으며 자식 교육에 그렇게 매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남도의 결정이 합당해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다.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모두 자기 앞가림하느라 바쁘고, 정해진 기간에 한 몫 챙기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한다.
선거에 떨어지면 앞일이 걱정되는 대의민주주의를 택하고 있으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보다 장기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정치인과 공무원을 우리는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가. 경남도의 결정을 주도한 이들이 존경스러워 보이는 대목이다.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치단체 각자가 특색 있는 정책을 선택하고, 그것이
성공적일 경우 다른 곳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남도의 선택이 다른 자치단체로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무상급식 폐지’가 잘된 정책임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절약한 돈으로 하는 교육
사업이 내실 있어야 하고 주민들의 피부에 와 닿도록 설계돼야 한다. 구호만 외치다 실패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나라 살림을 깊이 걱정하는 이들에게 경남도의 결정은 언뜻 비치는 장마 속 태양이다. 올바른 방향을 향한 용기 있는 결정이다. 그들의 결정이 성공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주민들의 지지를 받기를 기원한다. 피켓을 내려놓고 그 손으로 박수를 보낼 때다. 험악한 목소리를 낮추고 애정어린 마음으로 지켜봐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