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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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 댓글 5건 조회 2,782회 작성일 15-04-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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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41·경기도·7급)씨, 이민을 알아보다=8년 전 60대 1의 경쟁을 뚫고 9급 공무원이 됐을 때 내 가슴은 뛰었다. 사기업에 다닐 때보다 연봉이 3분의 1이나 깎여도 좋았다. 돈보다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했다. 아버지·아내에 이어 공무원 가족이 된 것도 뿌듯했다.

 하지만 난 얼마 전 캐나다 이민을 알아봤다. 공무원 일에 회의가 들던 차에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연금 개혁까지 나오니 결심을 굳혔다.

 왜 그러느냐고? 철밥통을 왜 걷어차려 하느냐고? 사람들은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이 왜 살기 힘든지.

 박봉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급여를 받을 때마다 비참하긴 하다. 지난해 3890만원(세전)을 받았다. 평가에서 S를 받아 성과급 250만원이 포함된 게 이 정도다. 대기업에 다니는 대학 동창은 8000만원, 중소기업에 다니는 동창도 5000만원은 받는데 창피해서 말을 못한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힘들다. 우리도 감정노동자다. 단속업무 하면서 모욕당할 때가 많다. 협박도 받는다. 사람들은 백화점 아르바이트가 쌍욕 듣는 건 안타까워해도 공무원이 듣는 건 신경 안 쓴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아내가 안산체육관에 내려갔는데 같이 간 공무원이 유족들에게 쌍욕을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공무원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데 헛웃음이 났다. 우리 같은 지방직은 퇴직하면 아파트 관리원을 한다. 무슨 산하기관의 ‘관피아’ 운운은 고위직들 얘기다. 지방직은 구제역이라도 터지면 매일 비상이고, 명절에는 특별교통대책 당직을 서야 한다. 아내까지 비상근무에 걸리면 새벽에 아이를 이웃 집에 밀어 넣고 간다.

 요새는 연금 개혁이 화제니 불만 있는 민원인들은 걸핏하면 “내가 낸 세금으로 연금 받으면서”라며 욕한다. 난 정년퇴직하면 140만원을 받게 된다. 이제 그것도 깎일 판이다. 공무원의 70%가 9급 출신인데 행정자치부 급여체계는 5급이 기준이다. 말이 안 된다. 우리는 퇴직금이 없는데 사람들이 국민연금과 단순 비교한다. 우리가 세금을 갉아먹는다는데, 그동안 국가가 경찰 순직 자녀 보상금 같은 데 공무원연금 빼다 쓴 거는 왜 이야기 안 하나. 국가가 공무원과 국민을 이간질시킨다.

 이 나라에선 별 희망이 안 보인다. 그래서였다. 이민을 알아본 건. 그런데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수중에 돈 1억원이 없어서다. 저축을 안 했느냐고? 공무원이 돼 보면 안다. 왜 돈을 모을 수 없는지. 빚내 아파트 사서 매달 150만원씩 갚고 아들딸 학원비·유치원비 쓰면 남는 게 없다.

 그래도 같이 근무하던 동료는 용케 올해 떠나겠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이 있어 가능하단다. 그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