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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정치의 쟁점 댓글 2건 조회 1,277회 작성일 15-05-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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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문

한국정치의 쟁점, 2010년도에 제목을 보고 관심이 있어서 수강을 하게 된 수업이다. 그리고 이 글은 한국정치의 쟁점이라는 과목의 첫 수업주제인 ‘제도의 형성 및 산업화와 민주정치의 발전 논의’와 ‘진보와 보수 논쟁’에 대한 여러 책과 논문들을 보고 정리한 보고서이다.

 

일단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서, 약간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개인적인 잡담으로 시작하려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년도 5월부터 대외활동으로서 ‘사회통합위원회’라는 곳에서 기자단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대외활동으로서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어려워 보이는 ‘사회통합위원회’라는 곳에 기자단으로서 지원하게 된 이유는 사회학도로서 ‘사회통합’이라는 주제가 너무나 관심이 있었고, 또한 학업의 공부로서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지원을 하게 되었으며, 하는 활동은 매월마다 ‘사회통합’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생산하고, 블로그의 관리 및 기사를 게재하는 일을 즐겁게 활동하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이러한 대외활동을 서문에서 설명하는 이유는 앞으로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나의 개인적인 시각인 ‘사회통합’이라는 내용이 항상 강조되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숙하고 부족하며, 개인적으로 ‘사회통합’이라는 정의하기 어려운 시각으로서 보게 될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너무나 생뚱맞은 개념을 꺼내게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서기도 하였기 때문에, 서문에 간단하게 나의 활동에 대한 내용을 적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번 수업의 주제인 ‘제도의 형성 및 산업화와 민주정치의 발전 논의’, 그리고 ‘진보와 보수 논쟁’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쓰자면, 내가 이 보고서를 쓰기위해서 읽은 책과 자료들에서 이해한, 아니 느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이번 수업에서 다룰 2가지의 주제는 각각 개별적인 주제이기 보다는 한국정치의 형성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나타난 한 ‘흐름’ 이라는 것이다.

 

특히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지만, 정말로 우리사회의 어느 곳, 어떤 쟁점이든지 연관되는 문제이며,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원과 정체성,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의 형성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인과관련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한국의 정치에서 일어난 큰 역사적 흐름과 그 속에서 잉태되어진 보수와 진보의 논쟁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2.한국정치의 형성

2-1.대한민국의 정체성의 형성

먼저 한국의 정치상황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즉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제도’라는 유형화된 사회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이전의 단계, 즉 ‘제도’의 기본이 되는 무형의 정신적인 관념, 즉 여기서는 ‘정통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대한민국은 반일과 반공이라는 이념을 양대 축으로 하여 탄생하였다. 따라서 일제의 식민지 경험을 통하여 체득한 반일주의와 해방 후의 좌-우익간의 대립,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서 고착화된 반공주의는 남한에 단독으로 수립된 신생국가의 이념적 근거를 제공하여 주었다.

 

 하지만 반일과 반공이라는 이 두 이념의 정치적 정통성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양립불가적인 개념이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흐름을 봄으로서 알 수 있는데, 이제부터 그러한 역사적인 흐름을 간단하게 짚어보도록 함으로서 반일과 반공이라는 두 개념이 어떻게 충돌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은 해방과 동시에 미국의 자유진영, 소련의 공산진영의 대립이라는 ‘냉전’이라는 혹독한 국제질서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 세계를 양분하는 이러한 냉전의 흐름 속에서 남한은 일재의 잔재 청산보다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것이 보다 시급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는 미국의 세계전략의 일환으로서 한창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아시아의 공산화를 방지하는 핵심국가인 일본을 보호하는 공산주의의 방파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남한 자체가 철저한 반공국가가 되어야 했고, 이에 따라 미군정은 좌익세력을 누르고 중도 우파적인 친미 정권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미군정은 이 과정에서 일제의 경찰조직의 일원으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 검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던 사람들을 다시 고용하였다.

 

이들이 비록 친일을 하였던 인물들임은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남한 내의 좌익세력을 제거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서 고용되었으며, 사회적인 요직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즉 남한에서의 민족주의는 좌-우의 이념대릭속에서 태동된 반공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냉전이라는 새로운 현살 앞에서 ‘타협’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반일과 반공이 서로 양립 할 수 없는 첫 번째의 이유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이유는 1960년대에 들어서는 경제발전을 위하여 일반과 타협을 하게 된 것이다. 1964년 한일협정은 국민의 대대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그리고 전략적인 이유에서 해방 20년이 채 되기도 전에 전격으로 이루어졌다.

 

군사쿠테타를 통해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군의 정치개입을 정당화하는 이유로서 가시적인 경제개발의 성과를 보여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 일본과의 공식수교를 통해서 경제발전의 시동을 걸기위한 자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서 반일과 항일정신에 기초한 한국의 민족주의는 또 한번 굴욕적인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박정희 정권이 반공을 국시로 내건 것은 강력한 반공이념만이 일본과의 수교를 통해서 민족주의가 ‘희석’ 되는 것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인 것이었다.

 

2-2.민주주의 유보, ‘압축성장’

먼저 사회통합위원회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만 꺼내도록 하자. 사회통합위원회의 홈페이지를 들어가게 되면 가장 첫 메뉴의 첫 내용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사회통합의 새로운 패러다임, 한국은 압축성장의 시대를 지나 현재 압축갈등의 시대에 처해있습니다.” 라는 문구이다. 그리고 나는 이 문구에서의 ‘압축성장’과 ‘압축갈등’이라는 단어를 주목하였다.

 

먼저 ‘압축성장’이란 무엇인가? 우리사회는 지난 반세기동안 너무나도 급속한 변화를 경험해왔다. 농경사회, 산업화사회, 정보화사회라는 ‘근대화 과정’을 서구국가들의 경우 2백년 내지 3백년 걸렸던 근대화 과정이 우리나라에서는 30여년 만에 일정한 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사회의 근대화과정은 ‘열악’ 그 자체였다. 일제치하의 식민지시대와 그 냉전으로 인한 민족의 분단, 6.25전쟁과 그 이후에 지속된 수많은 분단의 위협과 부족한 부존자원, 그리고 축적된 자본과 기술의 부족등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제 3공화국의 정부가 계획 경제를 실시하고 강력한 국가 주도하에 산업화 과정을 추진하였으며, 이러한 계획경제의 성공에 힘입어서 매년 10%정도의 경제성장률과 급속한 도시화, 사회계층의 구조가 변화하였다. 새로이 노동자 계층과 중간계층이 출현하였으며 또한 사회 내에서 기능적 전문화와 구조적 다원화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변동에서 정치적으로는 소위 ‘산업화 정치’가 실시되었다. 산업화 정치란 권력의 집중화와 확대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은 사회 전반에 걸쳐 과도하게 침투하여 영향을 미친다. 집중된 권력은 사회통제를 엄격히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의 목표를 강력히 추진한다.

 

즉 국가가 권력을 독점한 가운데서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 인적자원, 기술, 생산관리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감으로서, ‘효율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화 정치’의 시기가 바로 제 3공화국과 유신체제였으며, 이 시기에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성공을 이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화 정치’는 필연적인 국가로의 권력집중이라는 현상을 야기했으며, 이러한 국가권력의 비대화는 당연하게도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 및 민주주의를 고도로 제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사회도 구조적, 계층적으로 복잡하게 변화되었으며, 또한 규모에서도 커다란 산업사회로 변화하였다. 종합적으로 자본주의적 산업사회는 두 가지의 결과들을 가져왔다. 하나는 사회규모의 확대였으며, 다른 하나는 사회구조의 계층적, 직능적 다원화였다.

 

이런 결과들은 과대한 국가체계가 이끌어온 산업화 정치가 더 이상 우리사회를 일방적으로 통제하거나 억압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반증으로서 1980년 중반대에 들어서부터 ‘자유화’와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군부 권위주의에 이끌어졌던 과도한 국가통치의 시대가 막을 냐리고 국민들의 자유로운 참여와 동의에 바탕을 둔 민간정부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2-3.압축성장으로 인한 ‘압축갈등’의 시대로

우리사회가 경제적으로는 2만불을 넘어섰으며,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 또한 G20와 같은 국제적인 행사의 유치등과 같은 단편적인 증거들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너무나 빠른 압축성장의 시대는 현재 ‘압축갈등’이라는 새로운, 아니 새롭지는 않으나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사회적인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산업화정치에서 민주화정치로 넘어가는 변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것. 즉 사회가 분화되고 다원화되었지만 여전히 혼란과 무질서가 만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마키아벨리적 순간’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 즉 정통성의 확보가 될 수 없는 그 순간에는 정통성을 확보할 때가지 오직 권력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해방 후의 한국의 현대사는 마로 이 ‘마키아벨리적 순간’ 이라는 것이다.

 

즉 해방이 쟁취된 것이 아니고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누가 그 순간을 포착하고 장악하는 가의 문제는 정통성을 제공 해줄 수 있는 수많은 이념적, 이론적 담론의 각축장이기도 하였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순수한 권력의 문제였다는 것이며,

 

 비단 해방 후의 모습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의 전과정속에서 어떤 이념적, 철학적, 이론적, 역사적, 근거도 확실한 정통성의 근거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통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은 적나라한 권력투쟁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사회통합위원회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내어 본다면, 사회통합위원회의 조직구성을 이야기 해볼 수 있다. 사회통합위원회의 조직은 크게 ‘이념분과’, ‘계층분과’, ‘지역분과’, ‘세대분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 4개의 분과는 서로 다른 개념의 분과가 아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경상도와 전라도’ 우리는 이 한 단어에서도 수 많은 이념, 지역, 계층의 갈등을 엿볼 수 있으며. 그러한 갈등들은 서로 개별적이지 않다. 오히려 각 개념들은 때래야 땔 수 없는 꼬이고 꼬인 실타래와 같은 것이다. 바로 이렇게 꼬이고 꼬인 실타래와 같은 갈등들은 대한민국이 반세기 동안 겪어왔던 식민지시대, 냉전, 분단,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같은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미처 실타래를 풀기 이전에, 아니 풀 시간도 없이 얽힌 문제들 인 것이다.

 

3.이념갈등, 그리고 소통

즉 위에서 말해왔던 사건들을 종합해서 ‘실타래’를 조금 정리정돈 해보자.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의 갈등의 현실을 보면, 지난 세기에 우리의 경제는 ‘압축성장’하였으나

 이에 걸 맞는 사회적 인프라가 뒤따르지 못해 ‘압축갈등’의 시대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즉 사회갈등의 두 축을 정의해볼 때, 사회갈등은 크게 ‘이익갈등’과 ‘가치관갈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서구사회는 이익갈등에서 가치갈등으로 서서히 이행해 왔으나, 우리사회는 ‘압축성장’으로 인해서 이익갈등을 미처 해결하기도 이전에 가치갈등의 문제까지 더해지는 복합갈등, 즉 이념갈등이 표출됨으로서 현재 사회적으로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과다 지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은 이익, 가치 갈등이 공전하는 복합 갈등이면서 또한 모든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갈등이라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국가와 시장에 관한 보수, 진보간의 갈등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사에 내재된 분단과 전쟁, 한미관계라는 한국적 특수성이 이념갈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대외정책, 경제, 사회정책은 물론이고 최근에 연쇄살인사건이나 천안함 사건, 연예인의 말 한마디의 논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거의 모든 사안마다 치열한 이념논쟁의 대립구도가 형성돼 왔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족하지만 이러한 보수와 진보의 논쟁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시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념갈등, 즉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어느 사회에서나 있는 당연한 현상이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는 서로의 생산적인 논의와 토론, 비판을 통해서 사회의 발전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축복’ 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거와 같이 현재 우리사회는 해방 후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상처받은 정체성,

 

그리고 산업화시대에 경제발전이라는 명분아래에서 희생된 수많은 시민적 자유와 참여, 마지막으로 사회의 이러한 너무나 빠른 ‘경제적’, ‘역사적’ 발전 속에서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며 쌓여왔던 수많은 ‘이익갈등’들은 현재의 보수와 진보의 논쟁이라는 ‘이념갈등’이라는 복합적인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 갈등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치료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우리사회는 이만큼 빨리 발전한 만큼 ‘치료비’를 안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치료’와는 다른 별개의 문제, 즉 ‘예방’이라는 새로운, 혹은 근원적인 치료 방법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다. 갈등이라는 것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를 수평적으로 본다면 사회, 경제, 정치, 문화와 같은 수평적 구조에서의 소통이, 수직적으로는 이념과 행위 그리고 실제에서의 수직적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은 누적되고, 분출되는 것이다.

 

그것을 정치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사회의 민주화 과정이 부족하다고 볼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는 보수와 진보의 측면에서 본다면, 보수와 진보가 서로 소통하지 않기 때문에,

 

즉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의 차이를 모르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그러한 소통이 없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소통’들을 어떻게, 얼마나,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정치의 문제, 아니 더 나아가서 사회의 갈등을 해결 할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