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않는 악

방관자 효과는 단순히 곤란에 빠진 사람을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개인적 양심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큰 사회, 정치적 이슈와 연관된 함의를 가질 수도 있다. 사회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 Zimbardo, 2007)는 가해자의 폭력적이고 파괴적 행동뿐만 아니라 폭력을 외면하고 악을 고발하지 않는 것 또한 (행동하지 않는) 악이라고 규정하면서,

 

 보이지만 보려하지 않고 들리지만 들으려하지 않는, 그래서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침묵의 합창단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악의 기여자라고 말한다.

교통위반이나 회계 부정, 부정부패와 같은 비교적 일상적인 사회악에서부터 고문이나, 처형, 대량 학살과 같은 국가적 수준에서의 거대 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수많은 크고 작은 악한 행동과 제도가 근절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악을 고발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다수의 무책임한 방관자들의 존재 때문이라는 주장은 상당부분 타당하다.

 

작게는 이라크 전쟁 기간 중에 행해진 미군들의 포로학대 사건에서부터 크게는 히틀러와 나찌 정권의 학살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한 비정상적 폭력 상황들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그들이 조사한 폭력적 상황과 제도적 악의 이면에는 항상 그 악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사회 구성원 다수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악을 고발하고 처벌하는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공권력에 있다.

 

그렇지만 그런 공권력이 엄중하고 공정하게 행사되는지, 또 그런 공권력이 도리어 더 큰 악을 만들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경계해야 할 책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악을 처벌해야 할 공권력이 그 맡은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선거를 통해 공권력 행사의 주체를 처벌하고 교체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악을 묵인하는 공권력은 처벌받는다는 보편적 믿음이 있을 때만 악은 근절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편적 믿음은 행동하지 않는 방관자들이 책임의식을 가진 시민으로 변화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