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공무원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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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화일보 댓글 3건 조회 1,950회 작성일 16-06-3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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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공무원 공화국’  노성열 전국부장

 공무원이 금값이다. 학생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공무원” 한다. 여성가족부가 13∼24세 중·고·대학생의 인식을 살펴본 ‘2016년 청소년 통계’ 중 1위(23.7%) 답변이다. 2위 대기업(20.0%)과 비슷해 보이지만, 준공무원인 3위 공기업(18.1%)까지 합치면 41.8%로 올라선다. 대충 젊은이 2명 중 1명은 공시(公試)에 목을 매고 있다는 뜻.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항목을 처음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이 순위는 쭉 그대로라고 통계청 사무관은 설명해줬다.

이번엔 부모에게 아이들의 미래 희망 직업을 물어봤더니 역시 “공무원” 한다. 인구협회가 올 2월 20∼50대 기혼남녀 약 1000명을 모바일 여론조사한 결과, 1위(37.2%)를 차지한 답이다. 2위 의료인(16.5%)과 3위 교사(14.8%)를 더블스코어 차로 가볍게 눌렀다. 교사와 4위 법조인(7.5%)의 일부를 공무원에 포함시키면 부모 중 절반가량도 자녀가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두 집 중 한 집은 예비공무원 합숙학원인 셈이다. 이쯤 되면 헌법 제1조를 ‘대한민국은 공무원 공화국이다’로 고쳐 써야 할 지경이다.

왜들 이렇게 공무원에 목을 맬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생 제1 가치를 멸사봉공으로 꼽는 이 나라는 수천 년 전 로마 지성인의 표어 ‘프로보노(pro bono publico·공공의 이익을 위해)’의 산 현장이 된 것일까.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다. 최근 벌어진 다음 사건들은 공무원 열풍의 ‘진짜’ 이유를 잘 보여준다. 어느 중앙부처 사무관은 해외출장 중 아들이 “영어숙제 도와줘” 하며 국제전화를 걸어오자 같이 간 산하기관 직원에게 외주(?)를 줬다. 불쌍한 을(乙)들은 황당한 명령을 누가 수행할지 회의까지 했다 한다. ‘영원한 갑’의 직업적 안정성이 확인된다. 괜히 인기 직업 1위가 아니다.

이런 일도 있다. 30대 초반의 경찰 2명은 각기 다른 여고생과 성관계를 가졌다가 말썽이 일자 뒤늦게 옷을 벗었다. 둘 다 학교전담경찰관이었다. 자기가 보호해야 할 10대 청소년을 농락한 것이다. 심지어 학교폭력 예방 강연과 홍보 활동까지 다녔다니 늑대에게 양치기를 맡긴 꼴이다. “경찰 아저씨와 잤다”고 피해자가 교사에게 털어놓은 후 시끄러워지자 이들은 “가업 물려받으려” “적성 안 맞아” 핑계를 대며 사표를 냈고, 소속서는 징계는커녕 슬그머니 수리하고 끝냈다. 철밥통을 지키는 삐뚤어진 동료애다. 특근카드를 대신 긁어주거나, 퇴직 후 전관예우 거래를 당연시하는 도덕 불감증의 밑바닥에 이 조폭 근성이 깔려 있다. 공공개혁하려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란 첫 고개조차 제대로 넘지 못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나 더. 늑대 경찰들은 경력 5년 안팎의 신참이다. 고참 공무원이 젊은 신입을 놓고 “공직자의 사명감이 없다”고 혀 차는 장면을 여러 번 봤다. 삼성 갈 성적으로 왜 공무원 왔니, 하면 “편하잖아요” 한단다. 공무원의 갑질과 철밥통을 깨부수러 왔다가 1년 반 만에 손든 삼성 출신 인사혁신처장이 “완생하려다 미생으로 끝났다”고 한탄한 속내를 알 것도 같다. 

nosr@  문화일보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