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일하고 뿌듯해할 수 있는 도청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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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동근 댓글 11건 조회 4,849회 작성일 16-10-2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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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겠지만 힘이 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때로는 쉬고 싶거나 우울해질 때도 있다.
전체가 100명이라면 힘들어 하는 사람이 30명쯤은 아니 그보다 더 되는 것이 정상일지도..하지만 나머지 70명이 굳건히 생활하며 우울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한다. 또 시간이 가면 누군가는 힘들어지고 또 옆의 동료가 기운을 준다.
우여곡절을 겪고, 풀리지 않는 숙제를 해내고, 불가능 할 것 같은 일이 하나씩 눈앞에 만들어지면서 시간 속에 우리 자신을 던져 놓는 것이 직장생활이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이 곳 직장이라는 곳은, 젊음과 청춘을 바치는 곳이며 나의 꿈을 실현하는 곳, 죽음의 문턱 앞에 섰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을 더듬어보면 이 곳이 아닐까. 그만큼 직장 생활은 우리 인생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딱하게도 어떤 이는 가정보다 이 곳 직장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나는 웃으면서 일하고 뿌듯해 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

살기가 좋아졌지만 예전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직장 문화 속에서 적잖이 외로움을 느끼거나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이 생기는 것은 물질문화가 발달하고 상대적인 비교를 행복의 기준에 올려놓음으로써 생기는 현대인이 문화적 전염병이 아닐까.
그만큼 만족하는 문화, 서로를 칭찬하는 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청이라는 곳은 몇 십 년 동안 우리 선배들이 머물다 간 자리이기도 하며, 보이지 않는 많은 문화들이 그 간 만들어져 왔다. 나 또한 이제 갓 이곳에 입성한 공무원으로서 선배들의 발자취를 하나 하나 들추어볼 수 없지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무용담을 빙자한 풍자속에서 옛 선배들의 기운을 가끔씩 느낄 때가 있다.

민주화와 정치적 급변의 문화 속에서도 굳건히 이 자리를 지키고 땀을 흘려갔던 선배들이 있었기에, 경남도청은 누군가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며 우리도 그 연장 선에 살고 있다.

관선 시절 거쳐간 지사들도 있겠지만, 민선에 들어서고 난 후에도 꽤 여러명의 도지사가 이 곳을 거쳐 갔었고, 지사가 바뀔 때마다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은 조금씩 달라졌겠지만 우리가 웃고 울고 함께 머리를 맞대던 땀방울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 버릇 없다는 말이 아주 옛날에도 있었듯이, 직장 생활 힘들다는 말은 그 언제든 나올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힘들었던 지난 일들이 미화되어 추억으로 돌아봐지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들어 너무 힘들다 라고 말하는 청우들이 많이 보인다.
단지, 내가 노조위원장이기에 넋두리를 하는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한 숨소리에 진심들이 담겨 있는 듯하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 것은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몇 가지 말해보고자 한다.

똑같은 일을 똑같은 인원이 하더라도 모두가 힘들 수도 있으며, 정 반대일 경우가 있다.
그것은 어떻게 일하느냐, 얼마나 자발적으로 하느냐, 얼마만큼의 휴식을 중간에 넣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어린아이가 공부를 하더라도 부모에게 매을 맞고 눈치 보며 하는지, 적절한 타이밍에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어른이란 동물은 상당히 다를 것 같아도, 사회적으로 성장했을 뿐 아이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상사에게서 추궁당하거나 윽박적인 환경에서 일을 만들어 내는 것과 반대인 경우는 스트레스가 다른 법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직장의 민주화를 말하고 싶다.
도지사가 지시하고, 실국장이 지시하고, 과장이 지시하면 직원들은 그에 따라 일을 하게 된다. 아니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관료문화의 기본이며 조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제각기 판단대로 일한다면 도정의 가치와 방향이 어떻게 만들어지겠는가.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에 모든 정답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이 끊임없이 민원인(시군직원 포함)을 만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재구성하고, 행정정책의 방향을 조율해내고, 그러한 시행착오 끝에 현장감 있는 도정시책이 만들어지고, 도지사가 이끄는 도정방향과 접목되어 올바르고 바람직한 도정 운영 지표가 되는 것이다.
이상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가장 기본적인 원칙 속에 충실 할 때 흔들리지 않는 도정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요즘 들어 아쉬운 것은, 도지사가 지시하고, 실국장이 지시하고, 과장이 지시하는 그 과정에서 양방향 통신은 꺼져가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일방적인 통신만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직책을 떠나 맡은 바 임무는 다르지만, 자기 위치에서 피력할 수 있는 의사와 정보가 분명히 있을진대, 아랫 사람은 그져 듣기만 하고 만들어 내는 기계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전체적인 노동문화가 이렇게 가고 있으며, 노동의 가치와 개인의 소중한 의견은 점점 묻혀져 가는 시대의 흐름이 문제이기도 하다. 도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이런 문화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려 시도하는 것 자체가 조직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살기가 나아졌지만 더 어렵다 느끼는 것 자체가 노동의 가치, 개인 노동자의 존업성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열 두시가 넘었으니까, 어제 아침에 행정국장, 행정과장, 인사과장을 동시에 면담했었다.
도지사의 의중이 문을 열지 않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반되는 노동조합의 의견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지사님의 심기가 불편할까 집행부 주요 간부진들이 불편해서, 또는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었다.
올바르고 서로 이해하는 노사관계를 원치 않는 이가 어디 있으랴만은, 안타깝게도 청내 곳곳에 항의성 홍보전단을 붙이고 도지사가 퇴근하는 길목에서 시위 비슷한 행동을 했더니, 주요 간부들이 곤란했을 법도 했었다.

참석하여 내 생각을 소신껏 말했었다.
도지사가 잘 못 되었다고 비난할 것은 아니지만,
지금 도청 문화는 민주적이지 않다. 회의 석상에서 실국장이 도지사에게 쫓겨나는 일이 생기다보니, 쫓겨난 실국장은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과장을 닦달하게 되고, 다시 과장은 직원들을 똑같이 대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실국장, 과장의 개인적인 품성이 모두 다르기에 꼭 똑같다고 하기 어렵지만 대략 그런 맥락으로 행정이 전달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고스란히 하위 직원의 업무 가중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의사소통 구조가 이러하다보니, 결국 주요 권한과 정보를 쥐고 있는 이른바 실세 라인에서 오더가 떨어지면 힘없는 부서에서는 그것을 추진하기에 바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틈도 없으며 생각하는 것이 사치가 된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도지사가 정치적인 분쟁으로 시군이나 의회, 야권 등과 팽팽히 맞서거나 각을 세워오다 보니, 직원들의 일상적인 업무 외에도 정치적인 고민까지 업무에 더해져 일하는 것이 하나의 업무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행정업무만 한다 해도 시대의 흐름이 공무원 업무를 가중시키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논리개발까지 더해야 한다면 하위직 공무원에게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근무 환경에서는 우리의 안위를 보장할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을 들고자 한다.
조직의 크고 작음에 따라 차이는 날 수 있겠으나,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가진 이들이 때론 토론이 필요하다. 토론이라는 것은 어느 누가 이기고 어느 누가 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오류를 사전에 차단하기도 하며, 결정되어진 결과에는 모두가 존중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 민주적인 절차다.
앞서 언급한대로 도지사의 러더십이 다소 명령형 에 가까운 리더십이라면 그 나름의 단점을 한 번 걸러보는 측면에서도 직원들이나 노동조합에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 결과는 뻔한 것 같아도 그러한 과정이라도 거치면 소속 구성원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에 참여했다는 자부심도 얻을 수 있고,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행정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얼마 전 태풍 피해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몇 일에 걸쳐 대민지원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추진부서에서는 노동조합에 한 마디 상의도 협의도 없었다. 그냥 실과에서 들어온 인력의 명단을 취합해서 태풍 현장에 투입시키는 일에만 바빴다. 상황이 급했는데 어떻게 일일이 이야기를 하냐는 소리는 억지에 불과하다. 바쁘더라도 그러한 민주적인 절차가 중요하다고 생각만 되면 단 5분 10분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도지사의 손끝만 보며 일하지 않냐는 비아냥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얼마전 ‘노동조합에서 옥상문을 개방하는 이유’라고 대자보를 붙이고 소식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거기서도 언급했었지만, 적어도 직원들이 불편하거나 근로조건이 후퇴될 일이 있다면 직원들의 대표 기관인 노동조합과 치열한 토론을 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후퇴되는 노동조건을 조금이라도 막아내야 하는 노동조합의 입장과 도정을 이끄는 도지사의 의견이 조율되고 합의되어야 한다. 그 결과는 도민의 복지를 위해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하는 공통 숙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 자신도 부끄럽고 원망스러울 만큼 노동조합에서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듯이 노동조합이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했기에 기관에서는 그러한 의사소통의 절차를 생략하거나 무시해왔다는 스스로의 반성도 든다.
그래서, 그간 잘못했던 것은 미루고 이제부터라도 원칙에 입각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도지사는 어제 저녁 퇴근시간에 “좌파들이 옥상을 점거했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누가 옥상에 올라가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책임질거냐?”라고 이야기를 하며 퇴근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생각이 다르다. 그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 그러했으며, 누구의 잘잘못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직접적인 상황은 일단락 되었으며, 앞으로 옥상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살피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지,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극단적인 걱정은 그 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생각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우울한 일보다, 옥상이 녹지공간으로 조성되어 그 속에서 웃고 화합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왜 그려지지 않는지를.

청내를 지나가다 보면, 많은 직원들이 이야기를 한다.
노동조합이 왜 옥상에 그렇게 목을 메는지, 열어주지 않는 도지사도 문제지만 위원장도 다치지 않게 현명하게 잘 하세요라고.
심지어 노조 홈페이지에는 노조위원장이 아니라 옥상개방 추진위원장이라고 하라, 직원들은 바빠 죽겠는데 왠 옥상 타령이냐고.
그 말을 들을 때 반성을 한다. 얼마나 복지혜택을 그동안 챙기지 못했으면 옥상에 미친 위원장처럼 보였을까. 정말 무겁게 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주장하고 싶다. 내 눈에 보이는 옥상문은 옥상에 올라가고 싶은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고. 경남도청 노조위원장인 내가 주장하는 것은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하위직원을 위하는 도청 문화를 바꾸기 위한 그 첫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7급 공무원에 불과한 내가 직원 전체를 대표해야 하는 무거운 자리에 앉아서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되다. 강한 도지사에게 함부로 대들어 다치지 않을까 무섭고 힘드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말할 권리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라고 나까지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 스스로가 가장 겁이 난 것이다.

나는 민주노총에 가입한 적도 없고, 도정이 잘 못 되기를 바란 적은 더더욱 없다. 단지, 아주 평범한 도청 직원의 일원이지만 노동자의 권리, 노동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로부터 소중한 소명을 부여받은 노조위원장일 뿐이다. 언젠가 내가 이 자리를 놓게 되는 순간 많은 소회를 느끼겠지만 적어도 나는 말을 할 수 있었노라고 돌아보고 싶을 뿐이다.

도민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홍준표 지사님, 그리고 맡은 바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여러 선배님들, 청우님들, 그리고 동료님들, 도청은 우리 직장입니다. 보다 밝아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저도 지사님이 하시는 일에 더 열심히 힘을 보태드리겠습니다.






2016. 10. 26 자정이 지난 시간에.

경상남도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신동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