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위기, '늪 전략'으로 극복하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늪 전략' 댓글 0건 조회 1,014회 작성일 07-04-17 10:10

본문

 
 
 
  현재 농민은 전체 인구의 7% 정도로 매우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민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였던 수십 년 전과 상황이 판이하게 달리진 것이다. 그나마 고령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 적은 농업 인구만으로 거대한 국제 농업자본의 힘에 대항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온당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한다 해도 원천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도리 없이 우리는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농업은 국민 전체가 이해당사자로서 먹을거리 문제를 함께 책임지는 국민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민 모두의 힘으로 농업을 지키고 일구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국민농업으로 전환
  
  우리 농업이 국민 모두가 이해 당사자가 되는 국민농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첫째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농업의 일차적 기능은 식량 자급을 포함해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식량 안보 상황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농업의 역할은 더욱 더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은 안전한 먹을거리 제공이라는 질적 측면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건강한 식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 문제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단순히 배를 불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업은 얼마만큼의 농산물을 생산하는가라는 양적 생산에서 어떤 농산물을 공급할 것인가라는 질적 생산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럴 때 모든 국민이 우리 농업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둘째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국민 모두의 이해관계와 직결된다.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공기를 정화하며 홍수를 조절하는 등의 기능은 국민 모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안겨 준다. 만약 이러한 다원적 기능이 사라지게 되면 농업과 국민 사이의 결합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셋째 농민의 생존을 국민 모두가 함께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농민 생존은 농업의 목적이면서 전제 조건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한 징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농업과 농민의 지위다. 농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인식하면 농민의 사회적 지위도 함께 상승한다. 특히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생명산업으로서 농업의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농민을 하나의 전문직 종사자로 여기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농민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다원적 기능을 유지한다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사회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농업이 지니는 사회적 가치에 합당하게 농민의 생존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 2005년 도시민을 상대로 한 경실련의 조사에 따르면 농업 및 농촌 지원을 위한 추가 세금 부담에 대해서는 51.1%가 찬성, 45.9%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근소한 차이지만 찬성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농민은 국민 모두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며 거꾸로 국민은 농민의 생존을 보장하는 관계가 형성될 때 우리 농업은 강력한 자생력을 갖추게 된다. '안전한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 '농업의 다원적 기능 유지', '농민의 생존권 보장' 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해답은 오직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일구어지는 우리 농업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결코 수입농산물에 의해 대체될 수 없다.
  
  또한 전체 국민이 직접적 이해 당사자가 되는 조건에서만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식량 자급률을 법제화하고 직접 지불제 등 농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그 중 하나다. 지금까지 수없이 확인해 왔듯이 대다수 국민이 농업의 존폐에 대해 절실한 이해관계를 느끼지 않는 조건에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를 움직이는 것보다 국민을 움직이는 것이 먼저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그간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얻은 가장 뼈아픈 교훈이다.
  
  늪 전략
  
  우리는 그동안의 논의를 통해 농업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점검해 보았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지속 가능한 국민농업'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국민농업이 제대로 자리 잡게 될 때 수입농산물은 우리들의 밥상에서부터 추방되며 마침내는 국경선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으로부터 농업을 해방시키는 데 이를 것이다. 이 같은 우리의 전략을 일종의 '늪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늪은 생태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반면 외부에서 잘못 발을 들이면 목숨을 잃는 곳이기도 하다. 내부자에게는 생명의 늪이지만 외부자에게는 죽음의 늪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늪을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국민에게는 생명의 늪이면서 국제농업자본에게는 죽음의 늪이 되는 농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농업을 살리고 농민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농업 네트워크가 시급하다
  
  1987년 이전까지 사회운동은 대체로 '민주화'라는 단일한 의제를 중심으로 집결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다양한 의제로 분화되었고 그 같은 의제 분화를 통해 대중적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였다. 이러한 의제 분화 속에서 각각의 의제는 직접적 이해당사자만의 몫으로 떨어지는 양상이 벌어졌다. 의제 분화가 사회운동에서의 분업을 촉진한 것이다. 그 결과 사실상 농업은 농민만이, 환경 문제는 환경운동단체들만이 책임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의제 분화에 입각한 사회운동의 분업 체계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기초로 대중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본질적 지점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나친 분업 체계는 절대 다수의 국민을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어느 쪽도 광범위한 국민을 참여시키는 데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제 다시금 반전이 필요한 국면이다. 의제 분화가 아니라 의제 융합을 통해 대중적 지지와 동참을 얻어야 한다. 앞서의 논의를 통해 농업은 그 다원적 가치로 인해 생태, 건강, 지역공동체, 복지, 교육, 의료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이러한 특성은 도시농업의 활성화를 통해 농촌을 넘어 사회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대안농업이 실천 과제로 제기되는 첫 순간부터 농업과 연관된 여러 의제들을 하나로 융합시킨 새로운 국민운동이 추진되어야 한다. 우선, 지속가능한 국민농업 실현을 위한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하다. 네트워크는 대안농업, 생태보전, 생산과 유통, 소비를 아우르는 먹을거리 공동체 건설, 지역공동체 촉진과 이를 통한 대안 복지 시스템 모색 등 상호 연관된 영역을 포괄하는 통합적 프로젝트를 뒷받침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제융합이 가능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은 농업의 다원적 가치가 발현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국민농업으로의 전환이다. 관행농업을 고수하는 조건에서는 그러한 의제 융합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도리어 생태, 건강 등의 의제와 충돌을 빚을 가능성만 키울 뿐이다. 특히 농업과 다른 사회적 의제를 연결시키는 고리인 도시 농업의 활성화는 처음부터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 한복판에서 환경에 유해한 농약과 비료를 살포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국민농업으로의 전환을 통한 의제융합은 각각의 의제 해결에서 비약적 국면을 열어준다. 농업 입장에서 출발해 보자. 의제융합을 통해 농업은 다원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받기가 한층 용이해질 것이며 유통과 소비에 대한 안정적인 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농민 입장에서는 농민만의 외로운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실한 이점이 있다.
[이 게시물은 전체관리자님에 의해 2007-10-10 06:57:03 나도한마디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