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있는 공무원들은 얼마나 좌절과 고통을 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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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못난 댓글 0건 조회 1,475회 작성일 17-08-0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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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여성가족부의 한 공무원이 17년간 몸 담아온 공직을 떠났다. ‘영혼 없는 공무원’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다시 여가부에 복귀했다. 김은정 여가부 장관정책보좌관(사진) 이야기다.

김 보좌관은 199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2001년 여성부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줄곧 한 부서를 지켰다. 그러다 여가부 인력개발과장을 지내던 2012년 공직에서 물러나 은수미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실로 갔다. 3급 부이사관에서 4급 보좌관이 됐으니 스스로 좌천을 선택한 셈이다.

그는 공무원 사회의 보신주의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고 한다. 2008년 정권이 바뀐 후 공무원들이 정책 결정에 있어 소신 있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 왔다는 것. 특히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적어도 고시를 봐서 중간 관리자가 되면 기계처럼 시키는 대로 일할 게 아니라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런데 고시 출신 공무원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 가치를 지키지 않는 일에 아무 생각 없이 가담했다는 데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3급 승진 이후 고위공무원단 교육을 받았던 경험도 결정적이었다. 교육 도중 ‘청와대에서 정책 지시가 내려왔을 때 어떻게 할지’를 설명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김 보좌관은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라면 일단 국민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해야 된다”고 답했으나 담당 교수는 “결정은 이미 청와대가 내린 것”이라고 했다. 김 보좌관은 “국장 쯤 되면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여러 판단을 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라며 “그런 사람들에게 꼭두각시처럼 앉아서 청와대의 결정에 어떻게 따를 지만을 고민하라는 전제부터 틀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일을 그만 두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수소문 끝에 은수미 의원실과 인연이 닿았다.

김 보좌관은 그때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공무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며 “그러려면 우선 좋은 정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이미 한번 떠났던 자리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마음 먹은 건 새 정부가 ‘좋은 정부’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촛불로 탄생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 하는 정부는 좋은 정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또 더 좋은 정부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관 정책보좌관은 장관의 업무를 가까이에서 챙기는 일을 한다. 김 보좌관은 정현백 장관과의 인연은 과거 여가부에서 일할 때 업무 파트너로서 만났던 게 전부였다고 설명한다. 정 장관은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였다.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여가부 공무원과 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을 정 장관이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김 보좌관은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공무원이 왜 영혼이 없겠느냐”고 반문하며 “공무원의 영혼은 청와대의 지시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들의 생각을 살피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국가에 헌신하고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내용의 공무원 헌장 일부를 소개하며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가 국민들이 공직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여가부 직원들과 함께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다고 했다. 김 보좌관은 “여가부가 지향하는 성평등이라는 가치는 굉장히 혁명적”이라며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어야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고 더불어 남성도 해방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해 국민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권혜민 기자 aevin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