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가고 바람가는 길엔 '물소리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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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펀온글 댓글 0건 조회 1,288회 작성일 07-04-29 16:59본문
물 가고 바람가는 길엔 '물소리 바람소리' | |||||||||||||
[우포늪 통신]⑤ 세상 길에서 나는 소리 귀기울여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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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으로 가는 조붓한 길가에는 사랑을 구가하는 외로운 수새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습니다. 날개가 있는 것들이 날개를 접고 앉으면 외롭고 슬퍼 보입니다. 늪 밑구멍을 파고도 남을 긴 부리와 우아한 날개와 넓은 시야로 세상 바라보기가 뛰어난 꺅도요가 수심이 얕은 늪가에 앉아 먹이를 혼자서 찾아다니는 모습도 슬퍼 보입니다.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새를 바라보며 세상의 길에서 흘러나는 소리를 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오로지 살아 남아야한다는 덧없는 욕심으로 마음에 없는 말로 그럴듯하게 발라맞춤을 하지 마시고 민들레로 눌러 앉아 귀를 모아 보시지요. 우리는 타인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일에 서툽니다. 타인의 소리를 챙겨 듣는 것은 타인의 깊은 속내를 이해하고 그의 아픔을 치유 해줄 수 있는 치료제이기도 하며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예방 백신이기도 합니다. 우포늪 가는 길에는 유별나게 노오란 금단추를 단 민들레가 많이 삽니다. 지금 우포늪 민들레는 노오란 금단추를 단 그 자리에 하얀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 동그란 어쩌면 그렇게 동그랄 수 있을까요. 그 하얀 솜털에 잘디잔 씨앗을 달아 바람이라는 택배를 불러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토박이 민들레라고 정을 먼저 보내고 손을 내밀어 보면 토박이가 아닙니다. 서늘하게도 서양민들레가 턱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 낮게, 낮게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게 사는 우리 민들레를 밀쳐 내고 서양민들레들이 기세등등하게 살아갑니다. 영어가 우리말을 내모는 꼴이지요. 수년전부터 시작한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신부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잘 살아 볼 요량으로 민들레 꽃씨처럼 멀리 날아 온 이국의 신부의 얼굴 같기도 하여 묘한 연민을 느낍니다. 아시지요? 민들레는 꽃씨를 백리 이상 바람이라는 택배를 불러 보낸다는 사실…. 우포늪 가는 길에도 귀화식물로 그득합니다. 개망초. 달맞이꽃, 도깨비바늘, 망초, 미국자리공, 바랭이 풀이…. 우묵우묵 터를 잡고 드세게 삽니다. 이제 네 것 내 것 내 땅 네 땅 따질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꽃만큼 잎이 예쁜 민들레가 잎으로 꽃방석을 폭신하게 만들어 놓고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 민들레꽃방석에 앉아 세상의 길에서 자란자란 넘쳐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저 멀리서 총성도 비명과 함께 울려오고 가까운 여의도 쪽에서는 어리바리한 정치꾼들에 편짜기가 안 되어 버그러지는 소리까지 들려옵니다. 생명력 강인한 민들레처럼 퍼질고 앉아 사월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 보십시오. 분명 화왕산 억새 숲에서 흘러 온 물소리를 우포늪의 귀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들레의 그 하얗고 동그란 꽃줄기처럼 안테나 하나 내 달고 길과 길 사이에 도란도란 들리는 타인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숲에서 듣는 사람의 소리는 새소리 보다 아름답습니다. 사월은 사람이 민들레처럼 퍼질고 앉아 자연의 소리와 사람의 소리를 듣는 달입니다. /임신행(청소년 문학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