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글 공유 해도 되나요) 진정한 프로는 변화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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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끔씩 댓글 3건 조회 3,492회 작성일 19-05-20 11:25본문
못난 놈보다 잘난 놈을 먼저 잘라내라.
어느 젊은이가 과수원 옆을 지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나이든 농부 한 사람이 과일나무를 손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일나무의 가지 중에 싱싱하고 잘 자란 가지를 잘라내고 있는 거였다. 농부에게 다가간 젊은이가 물었다.
"어르신 지금 가지치기하시는 거 아닌가요?"
"아닐세. 새로 뿌리를 내릴 놈을 골라 꺾꽂이를 하려고 한다네."
"아! 네~에. 그렇군요."
이유를 알게 된 젊은이는 돌아서려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을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 이 나무에는 아주 못 자란 가지도 많은 것 같은데, 이런 건 잘라내는 게 좋지 않나요?"
"그래? 그건 왜?"
아무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농부는 대답했다.
"같은 나무에 있으면서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영양분만 축내는 가지는 어차피 열매도 잘 맺지 못할 거고, 차라리 미리 잘라줘야 다른 가지들이 골고루 영양분을 먹어서 잘 클 거 아니에요. 그래야 나중에 열매도 고르게 잘 열릴 거고. 안 그런가요?"
젊은이의 말에 농부는 미소를 지으며 막 잘라낸 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나? 어쩌면 이 놈 때문에 다른 가지들이 더 못 자랄 수도 있다네. 자네 말도 맞네만, 이렇게 혼자 커버린 녀석은 오히려 다른 가지들의 양분을 독차지해서 결국 다른 가지의 열매는 보잘것없게 되지. 물론 가지가 썩어 들어가는 건 당연히 잘라줘야지. 옆 가지도 썩게 만드니까. 그런데 이렇게 다른 가지보다 월등히 자라는 가지는 이 나무가 더 이상 맞지 않은 거야. 이런 건 아예 따로 살림을 차리게 해줘야지. 그러면 이 나무보다 더 클 수도 있어. 괜히 이 나무에 붙어 있는 건 이 녀석 입장에서도 불행한 일이지. 더 클 수 있는데 기둥과 뿌리가 받쳐주질 못하니 한계가 있는 거야. 이 녀석을 잘라내면 이 녀석의 자리를 차지할 다른 가지가 또 이만큼 크겠지. 그럴 땐 아주 못난 녀석도 어느 정도 더 클 수 있고 말이야."
고개를 끄떡이던 젊은이는 그래도 이해가 부족했다.
"어르신! 그래도 말입니다. 어느 정도 잘 자라는 가지들을 위해서 이렇게 못 자란 가지들을 잘라줘야 나무가 골고루 가지를 잘 뻗칠 거고, 그래야 과일들도 좋은 것들로만 잘 열릴 것 아닙니까? 보기 좋은 게 열매도 잘 맺더라고요."
농부는 자상하고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이보게 젊은이! 나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지 나무를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네. 건강한 나무를 많이 만들어내면 낼수록 수확은 당연히 늘어나지. 잘 자랄 녀석은 오히려 따로 키우는 게 나아. 나무마다 뿌리를 통해서 공급되는 양분은 한계가 있어. 가지 하나를 잘라내면 다른 녀석들이 그걸 자기 능력만큼 나눠먹는다네. 가장 잘 자란 가지를 잘라내면 그 다음 녀석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가장 못난 녀석도 이전보다는 더 먹게 되면서 성장을 한다네. 그런데 가장 못난 녀석을 잘라내면 그 녀석 몫 역시 다른 가지들이 능력대로 차지하면서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녀석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한다네. 비율대로 먹다보니 점점 더 차이가 커지는 거지. 일정한 양을 매일 다른 비율로 나눠서 차지하고 다른 비율로 성장을 한다고 생각해보게. 제일 큰 녀석을 잘라내면 다른 녀석들은 성장 순위가 상승하지만, 제일 작은 녀석을 자르면 죽어가는 순위를 매기는 것이 되는 셈이지. 작물을 살려내고 키워내면서 수확을 늘리는 것, 그게 농사가 아닌가?"
어느 집단이나 구성원 전체가 동등한 기량을 지닐 수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구성원들로 팀을 만든다고 해도 그 안에서 실력의 우열은 얼마 가지 않아 구분된다. 반대로 열등한 구성원들로 팀을 짜도 그 안에서의 차이는 존재한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만으로 우수한 실적을 얻기 위해 평가를 한다. 동등한 비용의 투자라면 우수한 인력에게 지원이 되어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들이고도 열등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손실의 원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평가를 통해서 하위를 차지하는 직원들을 감원의 일순위로 정해놓는다. 그러다 기업에 감축 사유가 발생하면 열등한 사원은 우선 감원 대상이 된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기업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일이다.
한 부서에 다섯 명의 사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들의 능력과 성과는 각각 최상, 중상, 중간, 중하, 최하로 구분된다고 하자. 이럴 경우 일반적인 방법으로 감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최하의 직원을 감원 대상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최상, 중상, 중간, 중하의 네 직원들 중 누군가가 이전의 최하 자리를 차지한다. 상대적인 평가로 그런 게 아니고 실제로 가장 비능률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최하의 능력 수준에 누군가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게 혼자가 아닐 경우에는 다른 멤버들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하향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그렇게 되면 부서의 전체적인 평균 능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대의 경우 최상의 직원을 내보내는 경우가 있다. 잘라내는 게 아니라 분사를 시키거나 다른 부서 혹은 상급부서로, 즉 상승된 여건으로 올려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이전의 부서 안에서 또 다른 역할이동이 생긴다. 최상의 자리를 중상, 중간, 중하, 최하 중 누구 하나가 차지하거나 여럿이 공동으로 조금씩 상향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럴 경우 부서의 능률이 이전보다 나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 역시 현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승된 여건으로 내보내진 최상의 직원은 더 큰 물에서 보다 많은 능력을 발휘하거나 한계에 부딪혀 정체 수준을 밟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선 손해가 아니다.
일반 수준보다 높은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인재라 부른다. 기업에 있어 인재는 가장 큰 재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인재의 육성보다는 인재를 선발해 쓰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는 키워서 역할을 하게 하는 것보다 필요한 재목을 뽑아서 그때마다 채워 넣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경영자와 기업의 수준에 맞는 효율만을 얻을 뿐이다. 경영이 '키워내는' 일이 아니고 '골라먹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흔히 경영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에 비유할 때가 많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도 기량이 탁월한 연주자와 떨어지는 연주자는 존재한다. 기량이 다른 단원들보다 월등하게 두드러진 연주자는 합주보다는 솔로로 나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기량이 탁월한 연주자는 자신의 밑에 묶어두고, 기량이 떨어지는 단원을 내보내기만 하는 지휘자는 늘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케스트라는 물론 탁월한 인재의 연주도 지휘자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인재의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지휘자의 수준에 맞춰 그대로 편하게 지내든지 아니면 뛰쳐나와 자신에게 더 나은 길을 찾든지.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직원들을 평가할 때 자신에게 적합한 성과를 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보니 직원의 평가 시스템이 우수한 직원을 발굴해내는 것보다 열등한 직원들을 가려내는 데 능숙하다. 경영의 목표는 최고의 효율을 지향하면서 구성원들의 맨파워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평균치로만 유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기대한 만큼의 효율을 못 내는 인원들을 솎아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기대는 다름 아닌 경영자와 기업의 현재 수준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수준보다 우월한 엘리트를 감당하는 시스템을 갖춘 기업은 아직 미미하다. 권한과 통제에 익숙한 환경에서는 그러한 의지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급변하는 경영환경은 슈퍼엘리트의 출현도 이미 예고하고 있는 시점이다. 기업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줄 새로운 인재의 역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재만 고르는 방식의 경영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물론 조직 내에서 암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는 제거되어야 한다. 하지만 집단의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법칙에 가까운 성향과 인재가 차지하는 역할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에너지의 지향점은 달라져야 한다. 평균보다 부족한 요소를 찾아 채우는 데 연연하기보다 기대 수준 이상의 성장가능 요소에 초점이 모아져야 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못난 놈보다 잘난 놈을 먼저 잘라내라 (진정한 프로는 변화가 즐겁다, 2004. 3. 15., 김학선)
어느 젊은이가 과수원 옆을 지나고 있었다. 그곳에는 나이든 농부 한 사람이 과일나무를 손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일나무의 가지 중에 싱싱하고 잘 자란 가지를 잘라내고 있는 거였다. 농부에게 다가간 젊은이가 물었다.
"어르신 지금 가지치기하시는 거 아닌가요?"
"아닐세. 새로 뿌리를 내릴 놈을 골라 꺾꽂이를 하려고 한다네."
"아! 네~에. 그렇군요."
이유를 알게 된 젊은이는 돌아서려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을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 이 나무에는 아주 못 자란 가지도 많은 것 같은데, 이런 건 잘라내는 게 좋지 않나요?"
"그래? 그건 왜?"
아무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농부는 대답했다.
"같은 나무에 있으면서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영양분만 축내는 가지는 어차피 열매도 잘 맺지 못할 거고, 차라리 미리 잘라줘야 다른 가지들이 골고루 영양분을 먹어서 잘 클 거 아니에요. 그래야 나중에 열매도 고르게 잘 열릴 거고. 안 그런가요?"
젊은이의 말에 농부는 미소를 지으며 막 잘라낸 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나? 어쩌면 이 놈 때문에 다른 가지들이 더 못 자랄 수도 있다네. 자네 말도 맞네만, 이렇게 혼자 커버린 녀석은 오히려 다른 가지들의 양분을 독차지해서 결국 다른 가지의 열매는 보잘것없게 되지. 물론 가지가 썩어 들어가는 건 당연히 잘라줘야지. 옆 가지도 썩게 만드니까. 그런데 이렇게 다른 가지보다 월등히 자라는 가지는 이 나무가 더 이상 맞지 않은 거야. 이런 건 아예 따로 살림을 차리게 해줘야지. 그러면 이 나무보다 더 클 수도 있어. 괜히 이 나무에 붙어 있는 건 이 녀석 입장에서도 불행한 일이지. 더 클 수 있는데 기둥과 뿌리가 받쳐주질 못하니 한계가 있는 거야. 이 녀석을 잘라내면 이 녀석의 자리를 차지할 다른 가지가 또 이만큼 크겠지. 그럴 땐 아주 못난 녀석도 어느 정도 더 클 수 있고 말이야."
고개를 끄떡이던 젊은이는 그래도 이해가 부족했다.
"어르신! 그래도 말입니다. 어느 정도 잘 자라는 가지들을 위해서 이렇게 못 자란 가지들을 잘라줘야 나무가 골고루 가지를 잘 뻗칠 거고, 그래야 과일들도 좋은 것들로만 잘 열릴 것 아닙니까? 보기 좋은 게 열매도 잘 맺더라고요."
농부는 자상하고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이보게 젊은이! 나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지 나무를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네. 건강한 나무를 많이 만들어내면 낼수록 수확은 당연히 늘어나지. 잘 자랄 녀석은 오히려 따로 키우는 게 나아. 나무마다 뿌리를 통해서 공급되는 양분은 한계가 있어. 가지 하나를 잘라내면 다른 녀석들이 그걸 자기 능력만큼 나눠먹는다네. 가장 잘 자란 가지를 잘라내면 그 다음 녀석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가장 못난 녀석도 이전보다는 더 먹게 되면서 성장을 한다네. 그런데 가장 못난 녀석을 잘라내면 그 녀석 몫 역시 다른 가지들이 능력대로 차지하면서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녀석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한다네. 비율대로 먹다보니 점점 더 차이가 커지는 거지. 일정한 양을 매일 다른 비율로 나눠서 차지하고 다른 비율로 성장을 한다고 생각해보게. 제일 큰 녀석을 잘라내면 다른 녀석들은 성장 순위가 상승하지만, 제일 작은 녀석을 자르면 죽어가는 순위를 매기는 것이 되는 셈이지. 작물을 살려내고 키워내면서 수확을 늘리는 것, 그게 농사가 아닌가?"
어느 집단이나 구성원 전체가 동등한 기량을 지닐 수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구성원들로 팀을 만든다고 해도 그 안에서 실력의 우열은 얼마 가지 않아 구분된다. 반대로 열등한 구성원들로 팀을 짜도 그 안에서의 차이는 존재한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만으로 우수한 실적을 얻기 위해 평가를 한다. 동등한 비용의 투자라면 우수한 인력에게 지원이 되어야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들이고도 열등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손실의 원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평가를 통해서 하위를 차지하는 직원들을 감원의 일순위로 정해놓는다. 그러다 기업에 감축 사유가 발생하면 열등한 사원은 우선 감원 대상이 된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기업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일이다.
한 부서에 다섯 명의 사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들의 능력과 성과는 각각 최상, 중상, 중간, 중하, 최하로 구분된다고 하자. 이럴 경우 일반적인 방법으로 감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최하의 직원을 감원 대상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최상, 중상, 중간, 중하의 네 직원들 중 누군가가 이전의 최하 자리를 차지한다. 상대적인 평가로 그런 게 아니고 실제로 가장 비능률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최하의 능력 수준에 누군가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그게 혼자가 아닐 경우에는 다른 멤버들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하향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그렇게 되면 부서의 전체적인 평균 능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론이 아닌 현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대의 경우 최상의 직원을 내보내는 경우가 있다. 잘라내는 게 아니라 분사를 시키거나 다른 부서 혹은 상급부서로, 즉 상승된 여건으로 올려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이전의 부서 안에서 또 다른 역할이동이 생긴다. 최상의 자리를 중상, 중간, 중하, 최하 중 누구 하나가 차지하거나 여럿이 공동으로 조금씩 상향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럴 경우 부서의 능률이 이전보다 나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 역시 현실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승된 여건으로 내보내진 최상의 직원은 더 큰 물에서 보다 많은 능력을 발휘하거나 한계에 부딪혀 정체 수준을 밟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선 손해가 아니다.
일반 수준보다 높은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인재라 부른다. 기업에 있어 인재는 가장 큰 재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인재의 육성보다는 인재를 선발해 쓰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는 키워서 역할을 하게 하는 것보다 필요한 재목을 뽑아서 그때마다 채워 넣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경영자와 기업의 수준에 맞는 효율만을 얻을 뿐이다. 경영이 '키워내는' 일이 아니고 '골라먹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흔히 경영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에 비유할 때가 많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도 기량이 탁월한 연주자와 떨어지는 연주자는 존재한다. 기량이 다른 단원들보다 월등하게 두드러진 연주자는 합주보다는 솔로로 나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기량이 탁월한 연주자는 자신의 밑에 묶어두고, 기량이 떨어지는 단원을 내보내기만 하는 지휘자는 늘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케스트라는 물론 탁월한 인재의 연주도 지휘자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인재의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지휘자의 수준에 맞춰 그대로 편하게 지내든지 아니면 뛰쳐나와 자신에게 더 나은 길을 찾든지.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직원들을 평가할 때 자신에게 적합한 성과를 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보니 직원의 평가 시스템이 우수한 직원을 발굴해내는 것보다 열등한 직원들을 가려내는 데 능숙하다. 경영의 목표는 최고의 효율을 지향하면서 구성원들의 맨파워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평균치로만 유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기대한 만큼의 효율을 못 내는 인원들을 솎아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기대는 다름 아닌 경영자와 기업의 현재 수준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수준보다 우월한 엘리트를 감당하는 시스템을 갖춘 기업은 아직 미미하다. 권한과 통제에 익숙한 환경에서는 그러한 의지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급변하는 경영환경은 슈퍼엘리트의 출현도 이미 예고하고 있는 시점이다. 기업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줄 새로운 인재의 역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재만 고르는 방식의 경영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물론 조직 내에서 암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는 제거되어야 한다. 하지만 집단의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법칙에 가까운 성향과 인재가 차지하는 역할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에너지의 지향점은 달라져야 한다. 평균보다 부족한 요소를 찾아 채우는 데 연연하기보다 기대 수준 이상의 성장가능 요소에 초점이 모아져야 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못난 놈보다 잘난 놈을 먼저 잘라내라 (진정한 프로는 변화가 즐겁다, 2004. 3. 15., 김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