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지배가 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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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의 지배 댓글 0건 조회 708회 작성일 07-05-09 08:42본문
사람의, 실은 모든 생명체들의 본질적 임무는 자식들을 낳고 키워서 대를 잇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임무를 위해 이 세상에 나왔다. 자신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식들을 잘 낳아서 기르는 한, 자연은 우리의 행복에 대해선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진화생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지혜다.
당연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감정이다.
그것은 아무것에도 양보하지 않는다. 부모에겐 자식들의 복지는 지고의 가치고 그것을 해치는 것은 없애야 할 악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도덕과 법을 지켜야 한다. 특히, 혈육을 위한 복수를 인정한 고대의 관습이나 법과는 달리, 현대의 법은 혈육을 위한 개인적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장 거센 자연적 힘이 가장 큰 권위를 지닌 사회적 규범과 부딪치는 곳이 바로 부모의 자식 사랑이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는 속담은 이 점을 잘 드러낸다.
자식의 복지가 부당하게 침해되었다고 생각한 부모가 법 대신 폭력에 호소했을 때, 예컨대 자식이 선생님에게 부당하게 야단맞았다고 판단한 부모가 선생님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했을 때, 우리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깔끔하게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난다.
그런 충동을 우리도 자주 느꼈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우리 자신들이 그렇게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부모의 행동을 엄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상을 참작해서 판단을 내린다. 적어도 그런 부모를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부모가 힘센 공인이라면, 사정은 사뭇 달라진다.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훨씬 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법원도 그들이 법을 통해 불의를 시정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지녔다는 사실을 고려해서 평균보다 엄하게 잘못을 평가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잘못을 얼마나 엄하게 평가해야 하는가? 이 어려운 물음에 대한 답은 아마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한도’일 것이다. 법의 지배라는 말이 뜻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터이다.
정치가들이나 관리들이나 기업가들과 같은 힘센 공인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해 미움을 더 많이 받게 마련이고 더 엄격한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권리들이 침해되어선 안 된다.
이런 추론을 비판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막상 힘센 공인이 실제로 대중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면, 시민들이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선정주의를 추구하게 마련인 대중매체들은 사소한 사건을 국가적 추문으로 만든다. 잘못한 부모가 대중매체의 미움을 받는 집단에 속하면, 보도는 사건의 본질이나 크기와는 관련 없이 전반적이 된다. 그리고 시민들의 생각도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아서 비합리적이 된다.
이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는 전형적이다. 당사자가 힘센 공인이고 그의 행동이 비난받을 일이지만, 대중매체의 보도는 사건의 본질이나 크기와의 비례를 크게 잃었다.
여론이 수사와 재판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현상은 피의자의 권리를 해치게 마련이다. 특히 방송의 보도는 어떤 기준으로 재더라도 지나쳤다.
대중매체가 대부분 재벌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사실이 이런 현상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벌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들이 한둘이 아니다. 재벌을 ‘사회적 악한’으로 모는 풍조가 얼마나 그르고 해로운가 아는 시민들이 이번 사건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는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긴요한 것은 시민들이 법의 지배의 뜻을 되새기는 일이다. 법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얘기는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은 바로 그런 모습에서 법의 본질이 또렷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우리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만드는 길이다.
여론이 재판을 대신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그 여론이 대중매체가 외곬으로 몰아서 다듬어진 것일 경우,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