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공무원 김영길, 이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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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동근 댓글 7건 조회 7,190회 작성일 20-12-1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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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공무원 복직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 당시는 공무원이 노동조합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조금이라도 집단적인 행동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도청에도 직장협의회를 만들고 노동조합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그런 활동을 주도했던 김영길, 이병하 선배님들이 그 시절 해직되었던 것입니다.

고참 사무관 이상되시는 분들은 그 분들과 함께 근무했던 추억도 있고 당시 그 분들의 희생이 오늘날 공무원노조를 만드는 초석이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버린 탓에 이제는 도청에도 그 분들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신규 공무원들에겐 생소하고 멀게 느껴지는 남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17년 간 해직자로 고통 받아오다 결국 한 분은 퇴직 연령을 넘겨버렸고, 또 한 분은 이제 퇴직 연령에 거의 도래되어 복직이 되더라도 겨우 몇 달 정도 근무 하실 수 있는 형편입니다.

코로나 시기라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두 분을 모시고 노조간부 몇 몇이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오며, 역사속에 묻혀져 있던 그 분들의 인생과 우리 공무원 노동조합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김영길 선배는 수차례의 구속과 수감생활을 했었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 녀석이 경찰에게 잡혀가는 애비의 모습을 티뷔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전국에서 최초로 공무원 노조 위원장을 맡았던 그의 삶의 무게가 참으로 무거웠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도청에 복귀하고 퇴직하겠다던 그의 꿈은 정말로 꿈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었던 일잘하고 성실하던 이병하 선배 또한 김영길 선배가 겪었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길을 걸었습니다. 한 때 도지사 후보로 출마도 했었지만 개인적 경제적 손실만 입었고 17년동안 야인으로 지내고 계십니다.  새내기처럼 하루하루 복귀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월 속에 잊혀져가는 그 분들을 생각하니,
퇴임식도 못해본 바보같은 영길 선배님 퇴임식과 17년 만에 다시 출근하는 병하 선배님의 복귀 환영식을 꼭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드리고 싶다는 표현보다는 남아있는 청우들이 반드시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코로나 때문에 너무나 제한이 많아져 버렸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모을 수 있는 최선의 마음으로 이 분들을 한번쯤 생각해보면 하는 생각에 그냥 넋두리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