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힘, 숫자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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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숫자 댓글 0건 조회 1,154회 작성일 07-05-23 13:12본문
우리는 참 숫자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믿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좋다’든지 ‘예쁘다’든지 형용사로 표현할 때는 모호한 것들이 숫자가 더해지면 꼭 집어 명확한 의미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한다’는 것보다는 ‘10만명 가운데 23등으로 상위 0.023% 안에 든다’고 하면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다’는 것보다는 ‘비 올 확률 93%’가 훨씬 과학적으로 느껴진다.
학문적으로도 수학은 과학의 발전을 이루는 근간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사과 12개를 3명이 공평하게 나누는 데서 시작하는 수학은 우주로 탐사선을 보낼 정도로 고도의 과학을 만들어냈다. 목성 탐사선 개발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우주학자 칼 세이건은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 중 수학적 정의를 빼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또한, 수학의 발달에는 본질적으로는 인문학이나 철학의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수학자들은 숫자 3의 발견에 대해 놀라울 정도의 높은 인문학적 가치를 부여한다. 나와 너의 개념, 즉 1과 2의 개념에 타인의 존재를 처음 인정하는 숫자가 3이라는 것이다. 3의 발견으로 비로소 수는 진정한 폭발력을 가지게 돼 4, 5, 6, 무한대로 끝없이 이어지게 됐다. 그런가 하면 수학에 철학적 개념이 도입된 것이 바로 ‘0’이라는 숫자의 발견이다. ‘없는 것’을 0이라는 ‘있는 것’으로 추론해 냈기 때문이다. 0의 발견으로 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한다.
비단 학문을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숫자를 적지않게 사용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나이를 따지고 외모(키와 몸무게)를 본다. 아파트 평수와 연봉은 늘 등장하는 우리들의 대화 주제다.
그런데 숫자는 언제나 진실일까? 숫자가 표현하는 ‘양(量)’의 개념이 우리 일상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가장 초보적인 수학 문제를 생각해 보자. 사과 10개를 두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려면 한 명이 5개씩을 가져야 할까? 수학 시험시간 이외의 답은 ‘아니오’다. 사과 10개의 크기가 다를 수 있다는 너무나 간단한 추론만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는 ‘명품’ 사과 1개가 보통 사과 10개보다 더 비싼 값을 받을 때도 있다. 실생활에서 숫자의 힘이 함정이 되는 순간이다.
아무리 발전과정에서 인문학, 철학 등 ‘삶’의 개념들이 녹아 있다고는 해도 본질적으로 숫자는 다양성의 시대를 반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숫자의 힘인 그 ‘한정’의 성향이 오히려 함정에 빠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숫자와 관련된 미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많은 것은 좋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이러한 미신이 추세로 자리잡았고 특히, 대량 생산 체제, 매스미디어의 등장 등은 이러한 미신의 절대적인 위치를 굳건히 했다. 큰 숫자는 좋은 것이고, 심지어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큰 숫자가 옳은 것이라는 믿음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믿음은 여지없이 깨지고 있다. 20%의 구성원이 전체 가치의 80%를 차지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을 여지없이 뒤집어 놓은 ‘롱테일의 법칙’은 이러한 믿음을 깨는 대표적인 사례다. 재미있는 것은, 판매량이 적어 잊혀져 가던 먼지 쌓인 책과 음반들이 ‘롱테일’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기술과, 사용자들의 힘이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요즘은 판매부수 수십만, 수백만의 기존 매스미디어가 때로는 방문자 수 몇천, 몇만에 불구한 다수 블로거의 공격에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이제는 어떤 현상에 대해 ‘질(質)’, 혹은 성향을 반영하지 않고는, ‘양’의 개념만으로는 숫자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됐다.
최근 들어 적극적인 사용자 참여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는 소위 ‘웹2.0’ 시대에 맞는 미디어2.0 플랫폼을 고민하면서 부쩍, 질적인 부분을 어떻게 수치로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사과 10개를 5 5로 나누는 것이 아닌, 인문학적, 실물적 가치를 부여해서 명품 사과를 골라내고 그 가치를 따로 매기는 일에 대한 고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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