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가라앉히는 나태주 시인의 시 몇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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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철 댓글 0건 조회 1,885회 작성일 22-04-0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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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p.288

너무나 유명한 시

'나태주 풀꽃'


십일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행복 1


1

딸아이의 머리를 빗겨주는

뚱뚱한 아내를 바라볼 때

잠시 나는 행복하다

저의 엄마에게 긴 머리를 통째로 맡긴 채

반쯤 입을 벌리고

반쯤은 눈을 감고

꿈꾸는 듯 귀여운 작은 숙녀

딸아이를 바라볼 때

나는 잠시 더 행복하다.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2

학교 가는 딸아이

배웅하러 손잡고 골목길 가는

아내의 뒤를 따라가면서

꼭 식모 아줌마가

주인댁 아가씨 모시고 가는 것 같애

놀려 주면서 

나는 조금 행복해진다

딸아이 손을 바꿔 잡고 가는 나를

아내가 뒤따라 오면서

꼭 머슴 아저씨가

주인댁 아가씨 모시고 가는 것 같애

놀림을 당하면서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진다.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나태주 행복 1'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