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세우기와 당위성은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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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지자 댓글 9건 조회 3,469회 작성일 23-09-0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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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지사가 취임한 이후 노동조합이 위축되는 분위기 속에서 현 도청 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 여러분들이 우리 노조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임 노조위원장께서도 한국노총 산하 공무원노동조합연맹의 임원으로 선출되어 상급단체에서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에 난 인사과 사건과 관련해서 당시 국장, 과장 등 간부들이 직원들을 의심하여 겁박하고, 개인의 차량 등을 확인하라고 한 지시는 부당합니다. 사건이 빠르게 일단락되어 직원들의 고통이 해소되어 다행입니다만 간부들의 부당한 행동이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노조에서는 해당 간부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기관에 재발 방치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요구에 대하여 해당 국장, 과장에 이어 행정부지사까지 공식적인 석상에서 사과를 하였고, 책임자 인사조치 요구에 대해서는 조사 후 결과에 따라 처분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노동조합도 기관측도 응당 해야할 일을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건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느닷없이 노동조합에서 해당 간부를 직권 남용으로 고발한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내세운 명분은 인권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누구의 부하이기 이전에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부당한 지시를 통해 나의 인간적인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 당했다면 사법기관의 힘을 빌어서라도 나의 권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도청 간부들이 이미 공식적으로 사과하였고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발이라는 강수를 두어야 했을까요? 저는 명분이 있다고 당위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발이 이루어지면 해당 국장은 사법기관의 수사를 받게 될 것이고, 위법 부당한 명령을 이행한 부하 공무원 역시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직권 남용을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즉, 수사가 혐의없음으로 종결되거나 아주 경미한 사안으로 판단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법정공방이 이루어지는 동안 수사 당사자가 받은 고통은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또 이러한 결과가 노동조합을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도청 간부를 고발하고 조합원들을 힘들게 하는 노동조합이라는 굴레가 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국장을 고발할 것이 아니라 국장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사실을 기관을 압박하는 도구로 사용했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도청의 문서가 도난당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문서 보관 소홀의 책임을 묻든, 청사방호 미흡의 책임을 묻든, 누군가에게는 책임을 물을 것인데, 이때 우리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가 가볍게 끝날 수 있도록 이를 협상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버렸고, 이제 우리 조합원 중 누군가가 처벌을 받아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번 고발을 통해 도청 노동조합이 얻을 것이 무엇입니까? 인권의 수호자 타이틀입니까? 이는 고발에 따른 재판이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있어 관련자를 엄중히 처벌한다고 결론이 나야 얻을 수 있는 타이틀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간부가 위법 부당한 지시를 하면 고발당하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 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잃은 것은 무엇입니까? 벌써 탈퇴하는 조합원이 나오고 있다는 소문은 정말 소문일 뿐일까요? 도청 노조가 조합원을 보호하지 않고 버렸다는 소문은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이번 고발은 도청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조위원장께서 왜 득보다 실이 큰 일을 하셨을까요? 이번 사건을 통해 이익을 얻는 단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도청 노조가 상급단체로 모시고 있는 공무원노동조합연맹입니다. 전국 단위 연맹체가 활동하는 무대는 삶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영역입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명분이 있고 없고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됩니다. 이에 우리 도청 노조위원장께서는 간부공무원을 고발함으로써, “공무원노동조합연맹은 위법부당한 지시에 저항하여 끝까지 투쟁하는 진짜 공무원노조”라는 명분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공무원노동조합연맹 내에서 일하는 경남도청 출신 간부가 연맹 안에서 제법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정치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상급단체는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삶의 영역에 있는 단위 조합과 정치적 영역에 있는 상급 조합은 입장 차이가 있습니다. 상급 조합은 하나를 내어주고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스스럼없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지만, 단위 조합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내 눈앞에서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흐르는 피를 빨리 지혈하지 않으면 목숨까지 위태로워집니다. 지금 우리 도청 노동조합이 처한 상황이 이런 상황 아닙니까? 상급단체는 우리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 진주의료원 보건노조 사태에서 이를 목격했습니다. 상급단체에서 명분만 챙기는 동안 하위 노조의 조합원들은 전부 직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 중에 누구 하나 제대로 보상받았다는 말을 들어봤습니까?

이번 고발은 명분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당위성은 없었습니다. 노조위원장은 지금이라도 고발을 철회하고 우리 조합원들을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노조위원장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한 조합원으로서 진심 어린 말씀을 드립니다. 고발을 철회하고 기관과 함께 노동조합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방법을 고민해 주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