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직 사업 추진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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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도살자 댓글 5건 조회 5,677회 작성일 24-07-0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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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직 사업 추진의 문제점

1. 현재 이거랑 저거 하고 있는데 그것도 해보라고 지시 떨어짐

2. 지시 떨어졌으면 보고는 해야 해서 안될 걸 알면서도 시간과 행정력을 들여서 안된다는 자료를 만들어 냄

3. 미리미리 다음연도 사업, 주요업무계획 생각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프로젝트가 끝나고 올해말까지 사업 구상할 여유가 있을때 이야기임

4. 사업 발굴이 항상 내일까지 모레까지 이번주까지 이런 식인데 영양가 있는 사업이 구상 될 리가 없음

5. 항상 자료제출과 갑작스럽게 생기는 지시 쳐내기 바쁜 상태에서 어떻게 깊이있는 사업을 만들어내라는 건지 알 수 없음

5-1. 학술연구용역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같이 연구할 여유가 없음 일단 착수시키고 나면 그냥 결과나올때까지 시간 때우기로 전락해버림

6. 나는 김밥을 마는 것이 전공인데 김밥마는거 담당이니까 라면끓이고 라볶이만들고 만두국 끓이고 뚝배기불고기도 해보라고 함

7. 그러는 와중 다른 곳 김밥천국에서 시간과 인력을 들여 집중연구한 끝에 만들어낸 샤인머스캣 탕후루가 대박을 침

7-1. 그 곳은 샤인머스캣의 주산지로서 너네 다른거 안 시킬테니까 이거만 집중해보라고 해줌

8. 간부단톡방에 바로 신문기사 올라오고 중간에서 내용이 변질된 후 우리는 개고기탕후루 조리계획을 당장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짐

8-1. 개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할건지 고기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할건지 음식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할건지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함. 대개 글자 그대로에서 제일 가까운 부서로 배정이 됨.

9. 김밥 말고 라면 끓이고 라볶이 만들고 만두국 끓이고 뚝배기 불고기는 안할 수 있냐? 그건 또 아님

10. 원래 하던 것들도 원래 페이스대로 가져가주면서 갑자기 개고기탕후루 만드는 방법과 절차 알아내느라 시간보냄

11. 김밥은 옆구리 터지고 라면은 한강라면 되고 라볶이는 떡이 빠졌으며 만두국은 만두가 없음. 뚝배기 불고기는 재료를 잘못 파악해서 못 만들어냈음

12. 애초에 탕후루를 따라하는 게 길이 아니었고 개고기로 하면 안된다는 건 실무라인 누구나 알지만 중간에서 누구 하나 NO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그냥 진행했음

13. 할당인원을 동원해서 개최한 개고기탕후루 시식회는 정작 개고기탕후루보다는 누가 오는지 누가 어느 자리에 앉는지가 더 중요함

13-1. 맛이 어떤지는 이미 중요치 않음. 양념된 SNS에는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추종하는 우리의 모습이 화려하게 멘션될 뿐

14. 결국 우리 점포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가 어디에선가 불어온 바람에 의해 다시 생겨남 그리고 6. ~ 12. 반복

번외. 개고기탕후루 실패 원인 분석 후 양꼬치로제탕후루를 얼린 구슬아이스크림을 만들어보라는 수정된 지시가 내려옴..

사업을 추진하는 공무원으로서 너무 패배의식에 젖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잘되는 사업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정치력이 있는 누군가가 만들어서 하라고 내려온 사업은 내가 지지부진해도 정부 부처에서 팔걷고 도와줘서 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기획한 개고기탕후루는 말단 공무원이 고생만 할 뿐 관심가져주는 이가 적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오는 현타가 심합니다.

그리고, 공모사업은 두가지입니다. 우리의 아이템이 신박해서 선정될 만 했다거나 정치인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켰거나..

하지만 신박한 아이템을 기획할 여유가 부족합니다. 왜냐면 해오던 것들과 하고 있는 것들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새로운 건 만들어내는건

몸과 마음이 힘듭니다. 미루다보면 또 며칠만에 날림으로 계획서 만들어서 제출하는데 의의를 두게 됩니다.

위에서 보기엔 그저 직원들 놀고 싶고 하기 싫어해서 일이 안된다 생각하겠지만

그것만 집중해서 하는 기관은 싱글렛 입고 스파이크 신고 트랙을 달려나가는데 우리는 오리발을 신고 김밥천국 메뉴들을 만들며 퀵샌드 위를 뛰어가려는 것과 같으니까요.

중앙부처에서 만든 정책을 집행하는 일선 행정조직이라 정부에서 시키는 것들도 해야하고 사업은 많이 하고 싶고하니 부족한 인력과 자원으로 무리하다 번아웃이 많이들 오고 있습니다.

직원들도 어찌할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 앞에 닥친 수북한 수풀 속에서 정글도를 들고 헤쳐나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속이 빈채로 겉은 커지지만 작은 충격에도 터져버리는 풍선을 불고 있을게 아니라 부피는 작지만 장인의 반복된 담금질에 강하게 단련된 뾰족한 창을 들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지시사항 보고를 위해 이것저것 다 손대면서 그때그때 1회성 눈가리기 식 업무 쳐내기를 해야 하는지..?

(모 커뮤니티에 지자체 조직의 문제에 대해 쓴 글인데, 특히 우리 조직 사업부서와 똑같아 눈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