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어느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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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태인 댓글 0건 조회 811회 작성일 07-08-1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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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어느 여름날

정태인(경제평론가)

(사례1) 2003년 1월 시당국은 1998년에 맺었던 최대규모의 물 사유화(privatization) 계약을 폐기했다. 기실 출발부터 삐걱거린 계약이었다. 계약 직후 물기업은 시당국에 추가 투자를 하려면 800억원을 더 내 놓으라고 요구했다. 기업이 지출하지도 않은 비용 370억원을 청구했고 시는 이 중 160억원을 지불해야 했다. 절실한 상하수도 구조 개선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700명의 종업원을 300명으로 줄였는데도 비용 절감의 화려한 청사진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하수처리비용은 매년 12%씩 올라갔다.

(사례2) 최초 4년 동안 평균 50% 이상 물값이 올랐다. 경영진의 월급은 50%에서 200% 인상됐고 90년에서 97년까지 10개 물회사의 이익은 147% 증가했다. 최초 5년간 단수 가정은 3배로 증가했고 94년에만 18,636가구가 단수됐다. 1989년에서 1997년까지 환경청은 물회사들을 260번이나 고발했다. 식수원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어떤 후진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첫 번째 예는 미국 아틀란타시에서 일어난 일이고 두 번째 예는 영국의 경우이다. 아틀란타 시는 세계적인 물기업 수에즈의 자회사가 맡았고 영국은 각종 특혜를 받은 10개의 물회사였다(훗날 이들은 프랑스의 수에즈, 비방디, 독일의 RWE 등에 합병됐다). 1990년대 물 민영화의 결과는 이렇듯 치명적이었다. 이질 발생율이 급증한다든가, 심지어 소방서의 수압이 낮아서 화재를 진압하지 못하는 일도 세계 최고라는 미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물론 물 초국적기업의 화려한 유혹에 넘어간 아프리카와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에서 벌어진 일은 훨씬 더 끔찍하다.
    
정부가 발표한 “물산업 5개년 계획”이 내년부터 실천된다면 2014년의 어느 여름날 대한민국의 풍경이 바로 이렇다. 정부는 세계적 기업을 육성하려는 것일 뿐, 결코 민영화(정확히는 사유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각종 민간참여형태(서비스 계약, 위탁관리, 임대, 양도, BOT, 매각)에서 이러한 일은 모두 발생했다.

“민간부문의 물 산업 분야 진입장벽 요소를 제거”하고 “기존 수도 사업자와 민간기업간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환경조성 및 제도정비”를 해야 한다. “시설투자에 민자유치가 필요한 상황이나 불합리한 요금체계 등으로 인하여 투자여건이 성숙되지 못”했으므로 “사업자가 안정적으로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요금체계”를 마련해야 한다(이상 “물산업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

수도요금을 올려서 민간사업자, 나아가서 외국기업이 물 산업에 참여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외국 사례에서 정부가 설정한 목표(물공급확대와 수질개선)는 달성되지 않았다. 민간기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은 신화일 뿐이다. 정부의 관료제가 문제라지만 대기업 역시 관료조직이며 내부의 부패는 더욱 심한 경우가 많다. 부족한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민간의 투자를 유도한다고 하지만 민간은 결코 돈 되지 않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다. 수도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의 경우 인구가 희박한 시골에서는 기존 시설마저 폐기하는 것이 기업의 논리이다. 특히 매 분기, 매년 주식시장의 평가를 받는 현재 상황에서 초국적기업이 20년 이상의 장기투자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헛된 꿈일 뿐이다.

이 계약은 또한 폐기하기도 힘들다. 미국의 지방자치체들은 폐기 과정에서 초국적기업의 광고홍보에 시달려야 했고,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해도 재판을 받아야 했다. 초국적기업들은 계약을 폐기하려는 지방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중앙정부의 물 보조금을 중단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더구나 우리는 한미 FTA를 맺었다. 계약 단계부터 최소한의 서비스를 보장받기 위한 ‘의무부과’도 금지된다.   중도에 계약을 폐기하는 것은 명백히 저 악명높은 “투자자국가제소권”의 대상이다. 볼리비아에서 벡텔(미국)은 민란의 경지에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투자자국가제소권을 포기했다. 민간합작기업의 지배구조(governance)에 자치체나 시민단체가 민주적으로 감독한다는 구상 역시 한미 FTA로 인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더구나 한미 FTA의 래칫조항(역진방지장치)은 이 모든 악몽에서 영원히 깨어날 수 없도록 한다.    

더 큰 문제는 재경부 등 정부가 “서비스 산업육성”을 내걸고 모든 네트워크 산업과 가치재산업(의료,교육,주택)에서 똑같은 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법, 자본시장통합법, 민간투자법 등의 제.개정이 선두주자들이다. ‘자발적 민영화와 한미 FTA의 이중주’는 이미 오케스트라 처럼 펼쳐지고 있다. 우선 한미 FTA를 저지해야 하며 동시에 사회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고 동시에 ‘선진경제’에 도달하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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