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시의회에 출석한 시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력으로는 재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재정재건단체 신청(지자체 파산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방청석에서는 한숨과 야유, 욕설이 터져 나왔다.
시장의 선언은 시민들이 생지옥으로 향하는 신호탄이었다.
시민세나 공공시설 이용료는 50% 올랐다. 수도료는 70%나 오를 예정이다. 그동안 무료였던 쓰레기 처리 비용도 유료화 됐다. 돈 없으면 쓰레기도 버릴 수 없게 됐다. 시립병원은 민영화하기로 결정됐다. 경영합리화를 위한 흔히 듣던 민영화와는 다르다. 시가 두 손 든 병원이 민간에 팔려가는 것이다. 인공 투석을 받던 입원 환자 33명에 대한 치료도 민영화가 끝날 때까지 중단됐다. 대중교통의 경로 우대제도 폐지됐다.
<15년짜리 지자체사기극의 주범>
시청 직원들의 출혈은 당연한 수순이다.
시장을 포함한 특별직은 급여가 60%나 삭감됐다. 일반 공무원도 30% 깎였다. 그것으로도 안 되니 수를 줄이겠다는 각서를 정부에 냈다. 3년 내 지금의 시청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안(案)이다.
급여도 삭감됐는데 퇴출의 공포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머리 좋은 공직자들은 이 와중에도 꼼수를 낸다. 85%가 퇴직을 희망했다. 그나마 재정이 남아 있을 때 떠나야 퇴직금이라도 챙길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원래 이랬던 곳이 아니다. 한때 세계가 부러워하는 관광 도시였다.
불과 2년 전인 2004년 2월의 모습은 이랬다.
영화제가 열렸다. 외부 관광객들이 눈 쌓인 길을 달려 역(驛)에 도착했을 때다. 길거리엔 시 마크가 새겨진 깃발을 흔들어 대는 아이들로 꽉 찼다. 아저씨 아줌마들은 꽃다발과 과자를 나눠주며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응원단이라고 이름표를 붙인 시민들이 곳곳에서 분주했다.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아줌마, 주차를 돕는 청년, 눈 치우는 아저씨…. 시민들 모두가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전야제(前夜祭)는 전임 시장에 대한 추모제였다. 90년에 이 행사를 만들어 15년간 끌어 오다 2003년 타계한 사람이었다. 현 시장은 그의 얘기를 하다가 감정에 북받쳐 울먹거렸고, 이를 보던 많은 시민들도 흐느꼈다. 십수 년을 시장으로 재직한 전임 시장은 그날 밤의 영웅이었다.
두 얘기는 일본의 유바리(夕張)시가 망(亡)하던 2006년 6월과 흥(興)하던 2004년 2월의 얘기다.
유바리 시의 흥망사는 15년짜리 사기극이었다.
드라마 제목-‘망해가던 폐광도시, 관광도시로 거듭나다’,
감독·연출-‘나카다 데쓰지’(中田鐵治) 전임 시장,
출연·관객-유바리 시민 1만3천 명.
내용은 그럴 듯했다. 영화제를 만들고, 석탄 역사촌도 만들었다. 고랭지 특산물로 멜론이 재배됐다. 한해 5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멜론은 다른 지역의 물건보다 30~40% 비싼 값에 팔려 나갔다.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각국의 모델이 됐다. 벤치마킹을 한다며 달려 온 한국의 지자체만 십수 곳이었다.
이러는 동안 유바리 시의 재앙은 다가오고 있었다. 속이 썩어가고 있었다. 화려한 행사는 어느 것 하나 지역민들의 소득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도시의 기본 요건인 인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 남모르게 쌓인 부채만 600억 엔에 달했다. 은행에서 일시차입금을 끌어다 회계장부를 맞추는 속임수도 그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이 사기극에서 남는 장사를 한 건 딱 한 사람, 나카다 데쓰지 전임 시장뿐이다. 그는 15년간 경쟁자 없는 장기집권을 했다. 그리고 야박하게도 도시가 파산하기 3년 전 죽었다. 그가 떠나는 길은 수천의 시민들이 흘린 눈물로 뒤덮였다. 사기극도 이쯤 되면 완전범죄 급이다.
<한국의 기념식·일본의 추념식>
지자체 성공의 모델 유바리 시는 지금 성공학의 교본에서 실패학의 교본으로 추락해 있다. 일본 지자체들 사이에 유바리 시의 사례를 연구하는 붐이 일고 있다. 여기엔 ‘제2의 유바리 시가 될 조짐이 있는 지자체가 13곳이나 된다’는 일본 정부의 으름장도 한 몫하고 있다.
이렇게 처참해진 유바리 시의 잔상(殘像)을 한 번쯤 우리 주변으로 옮겨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파산 선고를 해야 할 ‘고토 겐지’(後藤健二) 시장 같은 이는 없는지.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는 ‘나카다 데쓰지’ 전(前) 시장 같은 이는 없는지. 적자를 흑자로 꿰맞추기에 바쁜 ‘유바리 영화제’ 같은 것은 없는지….
대한민국에선 민선 4기 출범 1주년 기념식이 거행됐던 지난달, 일본에선 한 지자체의 파산 1주년 추념식이 열렸다.
김종구/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