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 사발에 얼큰해진 울 아버지 소 멍에 씌워 쟁기질 하고 외양간 쇠죽 쑤던 내 어린 유년시절.
그 때 면서기는 무서웠다. 세무서 직원은 더 무서웠다. 산림계 직원은 정말 더 무서웠다.
완장 둘러차고 세금차압 나왔다고 밀주조사 나왔다고 나무조사 나왔다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집집마다 들어가서 이리 들쳐보고 저리 찔러볼 때 울 아버지 울 어머니 벌벌 떨었었다.
지은 죄는 없다 해도 온 동네가 사시나무 떨 듯 알량한 생솔가지 한 다발이라도 행여 걸릴세라 콩닥콩닥 가슴 앓았었다.
어제는 째보 아버지가 갈퀴나무 한 짐 지고 오다 산감에게 걸렸고 삼순이 오빠는 바위 굴속에 숨었다가 용케 안 들키고 왔다더라.
곰보 아버지는 큰 딸 시집보낸다고 누룩으로 담근 밀주를 숨기느라 낑낑대며 술 항아리 들고 정신없이 뛰어가다 나무 끌텅에 걸려 왕창 와그르르 깨져버렸다더라.
큰 아들은 면 서기요 큰 사위는 세무서 직원이고 작은아들은 지서 순경인 왜정 때 일본 놈 순사 밀대였다던 코 보 영감 팔자걸음 좀 보소!
모가지는 철근 들어간 듯 뻣뻣하게 가슴은 뻐개져라 쫙 젖히고 거만스레 뒷짐 끼고 파이프 담배 뻐끔뻐끔 뻐끔대며 “어~험!”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막둥이 어머니 말씀인 즉
“막동아! 너도 얼른 커서 면서기 한 번 꼭 해야 해!”
그 때 눈만 끔벅끔벅하던 막둥이가 완장(腕章) 찼던 옛날 면서기(面書記)에서 디지털(Digital) 면장(面長)까지 40여년 걸어 온 민서기(民書記), 민장(民長)의 종점에서 다시 민(民)으로 돌아와 어머니 묘 앞에 ‘정년퇴직’를 고(告) 할 제, 어디선가 태진아의 사모곡이 들리는 듯...
‘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중략)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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