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덫` 걸린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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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의심의 덫` 댓글 0건 조회 803회 작성일 07-08-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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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과 나왔다는 모 부장 학력이 가짜 아니냐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나도 상사 석사학위를 검증해봤다."(K물산 A과장)
 
"하루에 통장 계좌를 3~4번씩 조회한다. 곳곳에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했는데 불안하기 짝이 없다."(A증권사 B대리)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끼리 서로 비방을 해대니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도무지 헷갈린다."(주부 김 모씨)
 
한국사회가 '의심의 덫'에 깊숙이 빠졌다. 신정아 교수 사태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학력위조 파문에, 파리떼처럼 달려드는 전화사기(보이스피싱) 극성에, 정치권에서 터져나오는 의혹 제기에 온 국민이 노이로제 환자가 될 지경이다.
 
가짜와 거짓의 범람은 사회 전체를 극심한 스트레스로 몰아넣고 있다. "나만 바보처럼 정직하게 살았나 보다"라는 상대적 피해의식 위에 "여차하면 나도 속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쌓이면서 '대인기피증' 같은 질병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강조하는 '신뢰(Trust)'가 한국사회에서 붕괴돼가는 조짐이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는 바로 신뢰의 차이"라고 단언하면서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이 급격하게 커져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학자 낵과 키퍼(Knack & Keefer)도 연구논문에서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국가 신뢰지수가 10%포인트 높아지면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상승한다"고 분석했다.
 
김태종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월드밸류서베이 조사를 보면 82년에 비해 2001년 한국 신뢰지수는 11%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며 "신뢰가 축적되면 협력이 촉진되고 경제에도 순기능을 미치게 되는 만큼 선진국 진입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신뢰 붕괴로 인한 사회적 파열음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직장과 대학에서 학위에 대해 의혹의 눈빛을 보내며 불신의 골이 깊어질 조짐이고, 대학에는 신랑ㆍ신부감 학력에 대한 사실 여부를 묻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뢰가 붕괴된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매사에 자기 방어적이 되고 혁신적인 제안마저 의심하게 되는 등 에너지 상당 부분을 자기방어 기제 발굴과 유지에 소모하게 된다"며 "결국 고비용 사회를 넘어 공동체가 해체되는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이유는 가짜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데다 거짓말을 해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문화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와 연예계에서 학력 위조로 지목받은 상당수 이들은 "실수였다"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잠적할 뿐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는 사례는 드물다. 허위 학력이 적발되면 영구 제명되는 독일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온정주의가 판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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