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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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문의 축적 댓글 0건 조회 928회 작성일 07-08-3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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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에 강의할 과목을 준비하기 위해 관련 참고문헌을 찾는 것이 교수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사회과학의 경우 학생들과 더불어 읽을 만한 한국어 텍스트가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인다.
 
몇 년 전 한국정치를 공부하러 온 외국 유학생이 국내 주요 대학의 한국정치론 수업에 사용하는 강의계획서에서 왜 한국어 문헌이 없느냐고 문의해 온 적이 있을 정도다.
 
미국의 정치학 수업에서는 제퍼슨이나 해밀턴 등 미국 건국 선조들이 남긴 기록을 필독서로 읽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도 메이지유신 주역들이나 전후 일본의 토대를 쌓은 주요 정치인들이 남긴 일기와 문서를 주요 대학의 정치학 수업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에 반해 우리 정치학계에서는 예컨대 역사상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대왕이나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인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저작들을 읽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한글 전용으로 바뀌면서 한문서적들에 담긴 우리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한글로 쓰여진 저작들이 충분하지 않아 그 속에서 기억될 만한 텍스트 발굴에 소홀한 탓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고전적 텍스트를 찾아내거나 고급스런 사유가 담긴 한국어 저작을 남기는 것이 한국학 발전을 위하여 긴요한 기초작업이 될 것 같다.
 
작고한 한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생전에 행한 강의 내용을 제자들이 노트 필기내용을 되살려 전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문적인 저작으로 연결되어도 될 만큼 깊이 있는 강의를 하셨을 교수님이나 수십 년 전 대학 시절의 강의노트를 간직하면서 스승의 전집을 펴낸 제자들이나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1950~1960년대 마루야마 마사오 도쿄대 교수가 행한 일본정치사상사 강의를 그 제자들이 노트 필기에 의거하여 강의록 전집을 발간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그런 은근한 저력이 우리 학계에도 싹트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이제는 교실에서 학생들이 기다릴 것이다.
 
 저작으로 기록되지는 못할지라도 학생들의 가슴 속에 기억될 강의를 해야 할 텐데, 개강을 앞둔 신참 교수의 마음이 신입생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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