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팽’ 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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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운동이 댓글 0건 조회 843회 작성일 07-09-1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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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변화 여부가 재계와 노동계의 화두다. 현대자동차 노사의 임·단협 무분규 타결이 그 계기다.
 
기대가 섞인 전망으로, 정확히 말하면 노동운동이 아니라 그 방법, 즉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의 변화 여부가 될 터이다.
 
노동운동과 그 방향은 바뀔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변화 문제는 재계와, 재계의 논리를 지지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특히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민주노총 등 노동계 내부에서도 귀기울여야 할 이유가 적지 않은 주제다.
 
 
현대차 노사협상 무분규 타결은 의미있는 일이다.
 
올들어 무분규 타결을 일군 사업장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유독 현대차에 사회적 눈길이 쏠리는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파업 후 타결’ 관행이 10년 만에 깨진 데다, 단일 사업장으로는 최대 규모 노조란 외형상 특징을 우선적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이번 무분규 타결을 두고 회사 측은 정몽구 회장의 선고공판을 앞두고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후한 제안’을 내고,
 
노조는 연례적 파업에 대한 악화된 국민여론을 감안해 이를 수용한 것이므로 ‘흠집’ 있는 것이란 지적이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그것보다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 더 많았던 협상이라는 평가가 더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조가 파업 찬성을 결의하고도 이의 집행을 보류한 채 마지막 협상을 벌이고, 회사가 파업 전에 일괄안을 제시한 것은 분명 변화다.
 
갈등과 소모적 대립이 일상화한 현대차 노사관계에 관한 한 그렇다.
 
-‘관성적 파업’국민여론 악화-
현대차 노사협상 무분규 타결의 의미는 울산시 축제분위기에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울산시장이 환영 메시지를 발표하고, 시내 400여곳의 식당이 보름 동안 음식값을 10% 깎아주고 있다.
 
현대차 앞의 한 횟집은 지난 4일부터 사흘간 소줏값을 받지 않았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장삿속’이라고 폄훼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이것은 국민여론과 상통한다.
 
현대차 노조는 여태껏 그것을 외면했으며, 그 결과는 지난해부터 불거진 노조원과 국민들의 파업 반대 목소리였다.
 
 
지난 6월 현대차 노조원 일부가 파업 불참을 선언했을 때 한 노동계 인사는 “노동운동으로 잘 살게 된 노조원들에게 노동운동이 토사구팽당했다”고 한탄했다.
 
 개량주의적 발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나온 오류로 해석된다.
 
노동자를 위한 파업이 아니라 노조 지도부의 정치력을 키우기 위한 관성적 파업이 잦을수록 파업의 효과는 줄어들고 노동운동에 대한 염증은 커지게 된다.
 
이러다보면 노동계는 진짜로 노동운동 전반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과거 20여년간 노동현장에서의 ‘파업 뒤 협상 타결’ 관행은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의 본질을 왜곡했다.
 
노사 불신은 깊어졌고 노동운동은 ‘불온한 운동’이란 사회적 꼬리표를 얻었다.
 
또한 ‘협상-결렬-파업-타결-노조간부 사법처리’가 일종의 공식이 됐다.
 
현대차 노사협상 무분규 타결은 그 고리를 끊을 계기가 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전환점이 마련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무분규 타결은 건강한 노사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재계의 무분규 타결에 대한 기대 속에 노동운동 해악론이나 배척론이 도사리고 있다면 건전한 발상이 아니다.
 
파업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에 편승해 파업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태도는 더더구나 안 된다.
 
파업지상주의건 파업에 대한 무조건적 죄악시 태도건 문제인 것은 마찬가지다. 노조가 권력화한 지금도 파업은 노동운동의 공정하고도 유용한 수단이다.
 
나아가 노동운동의 사회적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급증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가 그 증거다.
 
-노동계 내부 자기성찰 필요-
현대차 이상욱 노조위원장은 협상타결 후 “악화된 국민여론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의 변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잘 알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대중의 요구에 반하는 관성적 파업과 노조의 과도한 전투성은 자제해야 한다.
 
파업하지 않으면 지도부가 제대로 일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노조의 도덕적 공백도 따져볼 문제다.
 
노조 권력을 이용해 사이가 나쁜 회사 간부의 뺨을 때리고 뇌물을 받는 노조 간부가 있는 한 노동운동에 대한 외면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계 내부의 자기성찰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진보적 노동운동은 대중들의 ‘침묵’이라는 반란에 직면해 있다”는 이수봉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의 경고는 시사적이다.
 
그는 이 침묵의 책임이 노조 지도부에 있다고 진단했다.
 
노동계는 여기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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