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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향 댓글 0건 조회 749회 작성일 07-09-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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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아내와 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온 유럽의 첫 인상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같은 21세기를 살면서 문화도 많이 다르고 사고도 다르고 풍광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이국적인 것에 매료됐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목가적인 전원풍경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졸린 눈을 부라렸다. 과거의 찬란함과 현대의 세련미가 잘 조화된 런던의 건축물들과 유적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잘 보존된 도시와 문화재들, 화려하면서도 다채로운 파리의 거리들, 끝없이 펼쳐진 예술작품들, 과거를 사랑하고 현재를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문화수준을 높이는 국민성이 참 아름다웠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몇 백년이고 변함없이 고풍을 잘 간직해온 오래된 건축물들이 있고 언제 어디서나 예술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탈리아였다.
 
작년 이맘 때 그림 전시차 방문했던 세계 자연유산 등재지인 중국 쓰촨(四川)성 주자이(九寨)구의 경치와 물은 또 한번 나의 부러움과 감탄을 자아냈다.
 
 감시원이 있어 물에 발도 담글 수 없고 휴지를 버리다 발각되면 큰 벌금을 물릴 정도로 잘 보존돼 있는 자연은 후대에 자랑스럽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황산(黃山)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은 보지 않고, 주자이구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은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아름답고 수려한 풍광에 숙연한 마음까지 들었다.
 
과연 한국의 자연은 어떠한가? 옛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개발의 붐을 타고 전 국토가 난도질을 당하며 신음하고 변해가고 있으니 어린 시절 보고 느껴왔던 내 마음속의 보석 상자가 없었더라면
 
무슨 모티브를 갖고 영감을 떠올릴 수 있으며 후손들에게는 과연 어떠한 모습의 산하를 보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나는 지금 잠시 현실과 미래를 잊고 과거의 내 마음속의 보석 상자를 찾아 앞으로 내가 그려나가야 할 작업들의 모티브를 갖는 데 자그마한 영감을 동냥하고자 한다.
 
나는 특히나 해질 녘의 한가로운 황톳빛 전원을 사랑한다. 모든 것을 거두어 낸 한적한 오후의 고즈넉함이 인간의 욕망과 손때가 닿지 않은 오지를 주로 찾는 이유다.
 
나의 작품 속에서는 척박한 산이나 들이 많이 등장한다. 울창하고 푸른 산보다는 조금은 부족한 산이나 추수를 마친 비탈진 밭, 화전민들의 삶에 애착을 갖는다.
 
그 속에 질펀한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그림에 등장하는 집은 마음의 안식처다. 그 속에는 인생과 내 아버지의 체온이 담겨 있다.
 
따사롭게 비치는 햇살은 우리들의 희망이고 피어오르는 연기는 우리의 양식이다.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산골, 지게를 지고 다녔을 오솔길은 다른 곳과의 연결통로이자 연결고리다.
 
숲은 신비하고 조화가 무궁무진한 신선한 자연의 놀이터다.
이 모든 것들은 고도 신라의 찬란했던 유적지와 산과 들, 자연 그 자체를 놀이터 삼아 실컷 뛰어놀고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던 어린 시절 추억의 단면들이다.
 
이제 한 점 오염 없이 풋풋한 자연을 벗 삼아 보내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하나하나 들춰내 본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유독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전부였던 초가지붕의 외갓집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방학이 시작되면 어머니를 졸라 비포장 길로 한나절을 걸려야만 갈 수 있는, 길 양 옆으로는 미루나무가 곧게 뻗어 있는 외갓집을 찾았다.
 
외갓집 마을 어귀에 다다를 때면 차멀미로 초죽음이 돼 있었지만 외할머니의 품속은 언제나 따뜻했다.
 
굴뚝의 연기가 피어오를 때면 가마솥에는 밥 익는 구수한 냄새가 났다.
 
마당에 피워 놓은 모깃불의 연기가 매워 눈을 비비면서도 넓은 멍석 위에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의 은하수와 내 몸에 쏟아지는 아름다운 별의 숨결,
 
성찬이 끝나고 막 우물에서 건져내 온 온갖 여름 과일들이 내 마음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었다.
 
동구 밖으로 소를 몰고 일 나가시는 옆집 할아버지의 헛기침소리와 소 목에 매달린 방울소리가 어찌나 청아하게 들렸던지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토담을 나란히 하고 늘어선 감나무 중 제일 큰 감나무는 우리들의 놀이터 본부였다.
 
위험하다고 야단치시는 어른들의 성화도 뒷전이고 나무에 올라 내려다본 마을의 전경은 정말로 흥미로웠다.
 
옆집 아저씨의 등목하는 모습, 저 멀리에서 소를 몰고 쇠꼴을 베러 가는 건넛집 동무, 멀리 장을 보고 잔뜩 머리에 임을 이고 오시는 ‘아지매’, 지천에 널려 있는 과일들,
 
한창 목소리를 뽐내며 울어대는 매미들의 합창, 뒷산에 올라 전쟁놀이에 정신이 팔려 해가 넘어가는 것도 잊은 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놀이에 몰두하다 저녁 때가 돼서야 집에서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각자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 아이들….
 
아쉬움을 토하며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붉은 해와 계절에 따라 더해가는 초록의 물결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들에 핀 야생화의 처절한 몸부림과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모습 모두 지금의 나를 굳건히 지탱해온 밑거름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들이 생생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던 숭고한 빛의 기둥들, 풀냄새, 흙냄새, 땀냄새, 거름냄새, 밥 짓는 냄새 등이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아련한 추억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처럼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한국의 전원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내 그림 속에는 아무도 손 댈 수 없는, 수백 년이 흘러가도 훼손되지 않는 우리의 산하와 정서가 늘 그 자리에서 우리들의 포근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떠난다. 내 마음의 보석 상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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