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세계의 비밀스러운 속살을 살짝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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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골프 댓글 0건 조회 1,639회 작성일 07-09-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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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경제부장 article_more.gif
입력 : 2007.09.28 22:55 / 수정 : 2007.09.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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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정훈 경제부장
  • 일련의 스캔들이 고위 공직자 세계의 비밀스러운 속살을 살짝 드러내 보였다. 이를테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불가사의한 가계부(家計簿)문제다. 변 전 실장은 장기 투숙했던 청와대 인근 호텔식 레지던스의 숙박비로 매달 200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봉급은 얼마였을까. 그의 재산 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것저것 합쳐 월 875만원쯤 됐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200만원씩 숙박비로 써가며 두 집 살림 할 정도라고는 보기 힘들다. 게다가 예금액(본인+부인)이 1년 사이 4800만원 늘어났다. 월 400만원꼴이다.

    예금 증가 이유에 대해 그는 재산신고서에 ‘봉급 중 생활비를 제외한 잔액을 예적금·보험료에 납입’이라고 적었다. 이 말대로라면 봉급에서 숙박비·예금액을 빼고 월 275만원 갖고 생활했다는 얘기다. 정말 그랬을까.

    청와대 근처 숙소가 꼭 필요했다면 정부 예산으로 지원했어야 마땅했다. 뻔한 월급쟁이 공무원이 업무상 필요한 숙박비를 개인 부담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위선(僞善) 아닐까. 그러면서도 월 400만원씩 저축했다면 그런 불가사의가 어디 있을까.

    변씨의 가계부를 보면서 그의 관료 선배 L씨를 떠올렸다. 재경부 1급까지 지냈던 L씨는 현직 시절 유별나게 짰다. 직원 결혼식이면 축의금 대신 몇 천원짜리 앨범을 사서 보내는 것으로 때웠다. 공무원 월급 갖고 경조사비 감당이 안 된다며 고집을 부렸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의 공무원 봉급이 그리 여유 있지는 않다. 생활비 쓰고 회식 몇번 하면 경조사비 대기가 빡빡해야 정상이다. L씨의 고집은 생뚱맞은 게 아니라 솔직한 것이다.

    그러나 L씨 같은 원칙주의자는 소수파다. 한국에서 고위 공직자를 하려면 대체로 돈이 많이 든다. 월급으로 감당 안 될 듯한 고급 음식점에서 교제를 하고, 골프도 친다. 공직자들은 원래 집안에 돈이 많을까.

    관청가 출입을 해본 기자에겐 그 수수께끼에 답할 약간의 지식이 있다. 공직자들이 애용하는 방법이 선·후배며 친구에게 손 벌리는 것이다. 관료들과 밥 먹는 자리에 가보면 기업체 임원이나 변호사가 밥값 계산하러 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기에 따라 ‘훈훈한 미덕’일 수 있는 사연도 있다. 야근이 잦은 과천 관가에는 과(課)마다 몇백만원씩 음식 외상값이 쌓이게 된다. 그러면 선배 관료 출신의 기관장이나 기업 임원이 가끔씩 들러 외상값을 결제해주곤 한다.

    물론 이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직접적인 업무 대가성이 없고 현금을 받은 것도 아니니 관료들도 별다른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법인카드로 관료들 밥값을 내주는 민간인들은 마냥 천사 같은 자선사업가일까.

    여기까지는 애교라고 치자. 야심 있는 공직자라면 승진과 출세를 위해 또 돈을 쓴다. 못해도 감사원·국정원의 담당 라인 정도는 일상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게 관청가의 상식이다.

    더 출세하고 싶다면 정치권이며 정권 실세들과도 교분을 맺어야 한다. 학연·지연을 동원해 실세들에게 접근하고 명절 때 선물을 돌린다. 그러다 보면 돈이 더 필요하고, 급기야는 합법의 경계선을 넘어 무리를 하게 된다.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이 1억원의 뇌물을 받은 것도 승진 로비 실탄용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은 정치를 위해 돈을 받았고, 변양균씨는 사적(私的)관계를 위해 국가 예산을 전횡했다. 각자 목적은 달랐으나 세 사람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돈이 필요했다.

    세 사람 사건을 보면서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표현을 떠올렸다. 검찰 수사에서 나타난 이들의 행적은 불법과 합법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걷고 있었다. 불운이 겹치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지금도 승승장구하며 여전히 교도소 담장 위를 활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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