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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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돈을 보여줘? 댓글 0건 조회 1,330회 작성일 07-10-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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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보여줘?
경향신문|기사입력 2007-10-30 03:06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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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던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 회사에선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Show me the money(돈을 보여줘)’라는 답이 돌아와.” ‘돈’으로 치환되는 가시적 성과가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비용은 아끼고 생산성은 높이고 이윤은 많이 내는 것, 쉽게 말해 돈 적게 쓰고 돈 많이 버는 게 기업 경영의 본질 아닌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는 최고경영자(CEO) 출신 정치인이다. 50%를 웃도는 그의 지지율은 이 경력에 힘입은 바 크다. 정치인들의 ‘말의 성찬’에 지친 국민들은, 기업인 출신인 그는 다를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후보는 지난 23일 한국교총 초청 정책토론회에서 ‘주당 수업시수를 법제화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거 돈 더 달라는 거네.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줄 것 확실하게 주고 선생님들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후보가 수업시수 법제화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현재 대학교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연간 30주를 기준으로 매주 최대 9시간 수업을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초중등교육법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교사 1명이 주당 30시간 넘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외국어·예체능 등의 전담 교사를 더 채용하고 일반 교사의 주당 수업시간도 20시간 정도로 줄이자는 요구를 하고 있다. 교사 정원을 늘려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법적으로 뒷받침하자는 얘기다. 수당을 더 달라는 교사들도 있겠지만, 질문의 본질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보는 24일엔 자이툰 부대의 파병 연장에 대해 “한·미관계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다가올 자원전쟁에서 이라크라는 나라를 가까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해 있는 곳도 기름밭 위로 안다”고 말했다. 친미(親美) 논란에 휘말릴까 우려해 한·미관계보다 자원외교에 방점을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로 ‘기름’을 대는 건, 정유회사 회장이라면 모르되 국가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으로선 조금 협소한 인식이다.

이후보는 25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고향인 전북을 찾았다. 그는 “전북 하늘 위에 덮여있는 정치의 먹구름을 다 걷어내야 한다. 정치의 힘이 빠져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고 나와 있다. 경제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로 정의돼 있다. 정치가 왜 ‘걷어내야 할 먹구름’인지, 왜 경제와 공존할 수 없는지, 사전만 봐서는 알 도리가 없다.

이후보가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선거전략으로 내세우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닌 경우도 있다. 대통령은 때로 돈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어렵게’ 돌아서 가야 한다. 그게 정치다.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김민아/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