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選出 독재’ 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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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選出 독재’ 댓글 0건 조회 677회 작성일 07-11-2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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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3개월이지만 아직 임기가 남은 정부를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더욱이 임기 말임에도 임기 초 못지 않게, 아니 마치 임기 초이기나 한 양 의욕적, 정력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는 정부를 보노라면.
 
그러나 앞으로 5년을 책임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코 앞에 닥친 상황에서 적어도 ‘부(負)의 유산’이 승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지적은 필요하다.

물론 여느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도 잘한 게 있고 못한 게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정책을 놓고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릴 수도 있다.
 
 이를 판별하는 것은 앞으로 전문가들이 할 일이겠으되 당장 누가 봐도 과(過)로 치부될 수 있는 게 있다. 여론정치의 실종,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선출 독재’의 양상이다.

흔히들 민주정치를 여론정치라고 한다. 정부와 정치주체들이 국정운영을 비롯한 정치활동의 정당성을 여론에 기대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행태는 여기서 벗어난다. 여론에 기대기는커녕 아예 묵살한다.

노무현 정부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난을 받아온 터에 무슨 소리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일면 맞다. 포퓰리즘의 근본 요소가 ‘개혁을 내세우는 정치 지도자의 정치적 편의주의나 기회주의’라는 사전적 풀이 측면에서, 또 친북 좌파를 포함한 ‘노빠’ 등 ‘친노’로 편가른 이들에겐 적극 영합해왔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현 정부에서 여론정치가 실종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론의 정의가 ‘공공의 문제에 관한 다수 국민의 공통된 의견이나 요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기 편’에 관한 한 포퓰리즘 정부로 부를 수 있는 반면 국민 전체 혹은 다수를 놓고 볼 때는 여론정치와 담을 쌓은 정부란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전자의 경우 대북정책이고 후자는 언론정책과 공무원 증원정책이다.

노 정부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정책에는 ‘친노’로 분류돼온 언론매체들마저 반대해 왔다.
 
또 “문제는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가 아니라 일 잘하는 정부”라는 기묘한 주장 아래 지난 20일까지 5년 동안 하루 평균 56명씩 공무원을 늘려온 정책에 대해서는 범여, 진보의 딱지를 붙이고 있는 대선 후보들조차 모두 반대한다. 국민 거의 모두가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무조건 양보에 저자세, 성급하고 일방적인 지원으로 일관해온 대북정책의 경우 이를 지지하는 친북 좌파의 목소리가 있긴 해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 또한 작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여론에 근거해 정책을 전면 수정, 적어도 부분 수정이라도 하는 게 민주정치와 동의어로서 여론정치의 정도다.
 
여론을 귀담아듣기는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대통령과 정부라면 ‘민주독재자(democratator)’ ‘선출 독재’라는 힐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노무현 정부야 이미 지나갔으니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친다 치자. 차기 대통령을 비롯해 그 이후에도 노 대통령이 남긴 ‘부의 유산’을 이어간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범)여든 야든 일단 권력을 쥐게 되면 여론을 무시한 채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데 비춰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 대통령이 뚜렷한 선례까지 남겼음에야.

따라서 국민은 눈을 크게 뜨고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 후보를 찾아 투표해야 한다. 아울러 선출 독재가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가 ‘시민에 의해 선출됐음에도 시민을 장신구 정도로 여긴 독재 호민관 줄리어스 시저’(찰리 새비지, ‘제왕적 대통령제의 재래와 미국 민주주의의 전복’) 같은 민주독재자에게 유린되도록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