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때문에 더 흐려진 대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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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선문화 댓글 0건 조회 849회 작성일 07-12-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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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선 후보의 TV 토론에 6명이 등장하는 유례없는 다자 구도야말로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단일화에 의해 토론 참가자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마지막 토론회에도 6명의 후보가 참여할 것이 확실시된다. 다자 구도에 의해 집중도가 떨어지고 사회적 비용 지출이 대폭 증가하는 만큼 유권자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고 해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일부 후보들의 총선을 겨냥한 선행 투자가 다자 구도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BBK 한 방’에 대한 요행수의 기대 때문에 후보가 난립하게 됐다.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거의 모든 후보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주요 선거전략이었으며, ‘그 감이 나에게 떨어지지 말란 법이 있느냐’며 앞다퉈 줄을 선 것이다. 요행수에 모든 것을 걸다 보니 ‘감은 안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 버렸지만 이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역주행을 고집하기도 한다.

‘손자병법’의 핵심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쟁의 승패에서 요행수는 없다’로 집약된다. 전쟁의 승패는 준비된 역량에 따라 이미 전투가 시작되기 이전에 대체로 그 결론이 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서고금의 전쟁사를 보면 명분, 세력 연대, 무기 기술, 병참, 정보력, 조직적 단결, 전술 구사 능력 등이 승패를 결정지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요행에 의한 승리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13세기 무적의 몽고군이 일본을 침략했을 때 불가항력의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보아 회군하는 식의 요행수 확률은 거의 로또 당첨 수준이다.

정치적 전쟁인 대선 또한 요행수는 거의 없다. 다만, 잘하는 쪽이 이기는 경우보다는 못하는 쪽이 지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이 전쟁과는 조금 다를 뿐이며, 선거전에 돌입하기 전에 승패의 결론이 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DJ) 후보는 ‘4자 필승론’이란 도박을 했지만 양김씨의 분열로 노태우 후보의 당선은 애초부터 돌이킬 수 없었다. 또, 최근의 두 대선에서 세력 연대에서 실패한 한나라당은 연속 패배를 하고 말았다. 현재의 대선 판세도 민주화운동 세력의 10년 집권에 대한 국민적 평가라는 장기간 축적된 민심이 규정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참패 이후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달려온 여당은 신당 추진, 오픈 프라이머리, 남북정상회담, 후보 단일화, 네거티브 등 시종일관 요행수를 기대해왔지만 신통한 결과는 없었다. 간판만 바꾼 신당 추진이나 동원 선거 논란을 빚은 오픈 프라이머리는 오히려 추락의 가속 페달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요행수의 기대는 이성을 마비시켜 최악의 패를 택하게 하고 나아가 중독 증세를 낳기도 한다. 안 되는 길만 걷는 것은 야당인 한나라당이 전문이었는데 어느새 여당이 그 바통을 이어받은 셈이다.

민주화 이후 5번째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유독 ‘요행수’가 키워드가 돼 버려 정치 문화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데, 20년 만에 찾아온 대선 직후 총선이라는 정치 일정의 영향이 무척 크다.
 
 대선에서 지면 총선까지 밀린다는 초조감 때문에 특히 지역 기반에 기대기 어려운 수도권 의원들은 더 사활을 걸고 있다. 대선에서 지더라도 야당으로 총선에 나가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도 많았지만, 이번에는 여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레닌은 1905년 러시아혁명의 패배를 겪으면서 무모한 산화를 피하고 역량을 보존하여 후일을 도모하자는 ‘질서 정연한 퇴각’ 전략을 제시했는데, 현재 여당의 추락 과정은 무질서와 무모한 도박의 연속이다. 요행수에 승패를 거는 이들에게 대선은 투전판이 아니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