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까치처럼 사라진 거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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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라진 댓글 0건 조회 921회 작성일 07-12-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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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부리거나 자신의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탓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무려 531만표라는 사상 최대의 격차로 그동안 각종 공세에 시달리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샌드백처럼 경쟁자들에게 몰매를 맞던 때는 그의 약간 이지러진 왼쪽 눈이 그렇게 가련해 보이더니 승리자가 된 후에는 갑자기 매력적인 눈웃음으로 보이는 것은 하찮은 소시민의 아부근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화려한 등장 이면에 쓸쓸히 사라지는 거물들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보이는 것도 참새들의 눈에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는 불후의 명작 《적벽부》에서 조조의 《단가행》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월명성희(月明星希), 오작남비(烏鵲南飛)
달이 밝으니 별은 드물고,
까마귀와 까치는 남쪽으로 날아가네.”

후세의 평론가들은 밝게 떠오른 달은 조조 자신이고, 드문드문 빛나는 별과 까마귀나 까치는 남쪽으로 도망친 유비나 손권과 같은 무리들을 가리킨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계에도 이명박이라는 밝은 달이 떠오르니 조조와 소동파가 말한 것처럼 까마귀나 까치처럼 사라진 거물들이 많다.

한때를 풍미했던 대한민국의 정치적 거물들이 왜 초라한 모습으로 사라졌을까?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은 수나라의 대장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보냈다.
“신책구천문(神策究天文),
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
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
지족원운지(知足願云之)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여
책략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고,
아래로는 지리에 통달하여 계산은 절묘하기까지 하다.
 
싸움에 이겨 이미 공이 더 없이 높았으니,
이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적장을 천문지리에 통달했다고 칭찬했지만
사실은 주제파악을 하지 못한다는 핀잔에 불과하다.

천문과 지리에 통달하여 신령과 같다고 자부했던 대한민국의 거물 정치인들이 이번 대선과정에서 우중문이나 우문술처럼 세인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말았다.
 
한 시절 정치판을 주도했던 그들은 이미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업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족을 그리려다가 망신을 당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리지게 되었으니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수나라의 장군들처럼 만족을 모르고 욕심을 부리거나 자신의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탓이다.

사라지는 분들 가운데 가장 큰 거물은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상왕 노릇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몇 번의 정치적 좌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대통령이 되어 권좌에 올랐다.
 
오랫동안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던 호남인들의 기대를 업은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비록 일시적이나마 지역적으로 정치적 평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게다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으니 개인적으로나 국가로서도 대단한 명예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쯤에서 그쳤으면, 임기 말년에 아들들이 실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스스로를 낮추고 겸허하게 조용히 초야로 돌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그의 노욕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길이 남기려고 했다.
 
그 일환으로 그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상왕노릇을 했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고 투덜대며 한나라당에 연정 제안까지 한 이유가 그의 지나친 간섭 때문이었다는 말이 나돌았을까?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던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내내 그가 가장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거기까지도 좋았다. 그의 노욕은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에 압력을 넣어 비리사건에 연루되었던 자신의 아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일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술 마시다가 얻어맞은 아들을 위해 보복폭행을 했던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에 비하면 김 회장은 약과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비극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을지문덕의 유인책을 모르고 승승장구하는 재미에 빠져있던 수장 우중문과 우문술처럼 그는 이번 대선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석양으로 지는 해였다.
 
그가 주도했던 민주당은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주당을 압박하다가 여의치 못하자 자신의 아들마저 탈당시키는 강수를 두면서 반한나라당 후보 단일화를 강요했고,
 
그것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자신의 수하에 있던 사람들마저 그의 뜻을 어기며 결국 후보단일화를 하지 못했다.

어쩌면 결과적으로 후보단일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의 뜻대로 여권의 후보단일화가 성공했더라도 이번 대선에서는 결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호남인들의 선택은 훌륭했다.
 
호남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대표할 정치적 인물을 양성하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독주해 온 그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던 것이다.
 
그는 정계에 등장한 이후로 무려 40여년을 호남의 대표주자이자 희망으로 독주했다.
 
 
 그에 비해 영남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을 거쳐 이명박으로 이어지기까지 여러 명의 정치지도자를 배출했다.

대선이 본격화되기 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손학규를 포함한 한나라당의 후보들이 1등에서 3등까지 휩쓰는 것을 본 뜻있는 호남인들은 호남을 대표할 인물이 연소한 정동영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을 것이다.
 
김대중은 호남인들에게 희망이었지만 결국은 절망을 안겨주고 말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했던 고향사람들을 저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그는 자신의 통일정책을 잇는다는 욕심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그의 노욕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한 점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김대중의 압력을 물리친 민주당 박상천 대표의 용기와 정치적 안목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박상천과 민주당은 김대중의 협박성 압력을 거부함으로써 그를 정치무대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의 정치적 공과를 논하는 것은 식견이 짧은 필자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호남을 대표할 새로운 정치적 거물이 등장할 때가 되었다.
 
이명박이라는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등장하자 그는 한 마리의 늙은 철새가 되어 쓸쓸히 남쪽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나 싫어했던 사람들을 막론하고 짙은 회한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회창의 정치적 말로는 더욱 처량하다.
 
그가 김대중에게 패했을 때는 이인제와 그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김영삼을 탓하면서 그의 패배를 아쉬워했다.
 
국민들은 대선에서 패한 그가 김대중 정권을 견제할 것이라는 기대로 야당에게 의석을 몰아주었다.
 
김대중 정권 5년 동안 세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집권야당’의 지도자로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사람들이 그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김종필과의 정치적 협상을 거부했으며,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와 거래를 하지 않았다.

정치적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당당하고 의연한 대결을 시도했던 그에게 국민들은 대권 재수의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두 번째 도전에서 노무현이라는 경량급 경쟁자를 물리치지 못하고 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세인들은 다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나온 최고의 엘리트가 목포상고와 부산상고라는 지방의 상업고등학교 출신에게 잇달아 패했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정계를 은퇴했던 그가 세 번째로 다시 지방인 포항의 동지상업고등학교 출신에게 패하는 길을 선택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정계에서 은퇴한 그가 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던 것은 그의 부하들이 대선자금으로 구속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는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책임을 주장했다.
 
그것까지는 그래도 거물정치인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해안의 해안도시인 목포, 부산, 포항의 상업고등학교를 부각시키는 역할이 주어져 있었다.

그의 세 번째 대권 도전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정권교체를 바라던 보수층은 그의 등장으로 상대의 네거티브공작에 시달리던 이명박 후보가 혹시나 낙마하면 대타로 등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권교체의 보증수표였다.
 
 이명박 후보와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던 박근혜의 일부 지지자들이 그에게 희망을 걸기도 했다.
 
게다가 한나라당의 경선 이후 높은 지지도를 믿고 다소 오만한 태도를 보였던 이명박 진영을 압박하여 이재오를 낙마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한나라당의 결집을 유도했다.

그 정도에서 그의 역할은 끝이 났지만, 그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적진의 네거티브에 기대했던 것이 그의 오판이었다.
 
그 결과 그도 한 마리의 초라한 까치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길조로 등장했지만 욕망이 증폭되어 결국은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다음에 이회창이 기대하는 것은 집권에 성공한 한나라당의 내분일 것이다.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대권과 당권을 두고 벌써부터 분란이 시작되는 상황이 그에게는 희망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의 그러한 기대는 대선 막바지에 세 번이나 박근혜의 집으로 찾아갔던 것으로 증명된다. 박근혜가 절묘한 초인술로 자신을 불러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그는 아마도 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두 거물의 초라한 모습의 배경에서는 그들의 오랜 경쟁자들이 야릇한 표정으로 비웃는 모습이 보였다.
 
상도동에서 칩거하던 김영삼은 최고의 정치적 감각을 지닌 고수답게 나타나 이명박을 지지하며 일생의 라이벌 김대중의 몰락을 재촉했다.
 
덤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회창마저 날려버리는 초절정의 무공을 자랑했다.
 
그는 작은 승리자였지만 왠지 심술쟁이 같은 느낌이 든다.
 
이명박 당선자가 한나라당에 자랑스러운 모습을 나타냈을 때 기묘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김종필의 모습은 더욱 시니컬하다.
 
김수환도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두 거물의 사라짐은 제법 요란했지만, 그들의 정치인생에 조연역할을 했던 작은 별들의 사라짐은 별다른 느낌도 주지 못한다.
 
가장 웃기는 사람은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수성의 행보이다.
 
사람들은 그가 5억원이라는 공탁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궁금했을 뿐이다. 언제 나타났다가 언제 사라졌을까?
 
아무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삼수생 두 사람은 제법 반짝거리다가 사라진 별이다. 이인제와 권영길은 끝까지 있지도 않는 용을 쓰다가 한 줄기의 혜성처럼 사라졌다.

2007년의 마지막 보름을 이틀 앞둔 오늘 밤에는 유난히 달이 밝았다.
 
이명박이라는 달이 뜨니 이인제, 권영길, 이수성과 같은 잔 별들은 사라지고 김영삼, 김종필, 김수환이라는 제법 끈기 있는 별들만 흐릿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이 정식으로 대권을 잡는 새벽이 오면 그들도 사라질 것이다.
 
멀리 관악산 너머로 초라한 날개 짓을 하며 사라지는 김대중, 이회창이라는 까마귀와 까치의 모습도 보인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모습은 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