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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9일 밤, 대통령선거 개표 결과를 지켜보며 줄곧 한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바로 ‘실용주의’입니다.
다음 날 아침 펼쳐든 ‘동아일보’ 기사에도 “대한민국은 ‘열매 없는 이념’보다 실용을 택했다”는 제목이 눈에 띄더군요. 바야흐로 ‘실용의 시대’가 오려는가 봅니다.
사실 ‘실용주의’가 각광받을 가능성은 진작부터 보였습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실용적 경제관’을 내세워 지난 1년간 여론조사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2월에 출범할 새 정부에 ‘실용정부’라는 이름을 붙이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하지요.
동의합니다. 우리도 이제 부질없는 보혁(保革) 논쟁은 정리할 때가 됐습니다. 선진국들을 둘러봐도 이념 갈등은 철 지난 유행가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 빈자리를 국익(國益)에 입각한 실용주의가 차지하고 있는 게 세계적 대세이지요.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도 비로소 제 궤도를 찾아가는 듯해 안도감이 듭니다.
찜찜한 구석도 있습니다. 개표가 거의 끝나가던 19일 심야 TV토론에 나온 한 논객의 말이 막연하게 찜찜하던 그 부분을 일깨워주더군요.
“이미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이명박식 토목경제’가 과연 최선의 대응책인지는 의문이다….”
좌파 성향인 그 논객은 이명박 씨의 당선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대운하 공약을 빗댄 ‘토목경제’라는 표현을 쓴 걸 보니 말입니다.
아무튼 그분의 말은 개발시대 주인공이 성장제일주의식 정책을 펼칠 때 야기할 수 있는 양극화 심화 등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굳이 신자유주의를 운위하지 않더라도 실용주의가 진보 이념과 대척점에 있는 입장인지는 의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실용주의가 보수 이념과 더 가깝다는 식의 논리도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대선 이후 우리 사회의 보수는 환호하고, 진보는 좌절합니다.
단지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는 이유만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철학의 빈곤함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은 실용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이나 정책이 유용성 효율성 실제성을 띠고 있음을 가리키며…”라고 설명하고 있더군요.
유추하면, 유용하고 효율적이고 실제적이라면 좌파 정책이든 우파 정책이든 모두 실용주의 정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제대로 된 실용주의를 보여주기 바랍니다. 철학사적으로 볼 때 실용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와 맥락이 닿아 있다고 합니다.
이명박 차기 정부가 좌와 우를 넘나들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뛰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아직은 낯설고 촌스럽게 들리는 ‘실용정부’라는 말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