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여권 사람들은 “전쟁하자는 거냐”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김정일 압박 조치만 나오면 자동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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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말은 이 정권이 처음 쓰는 게 아니다. 기자는 이 말을 김대중 정부에서도 아니고, 김영삼 정부 때 고위 관료에게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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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똑똑하고 잘나가는 관료로 장관에까지 오른 상태였다. 그가 어느 자리에서 북한에 쌀 지원을 하는 문제로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다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고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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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튀어나온 계기와 분위기, 저간의 사정이 지금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으로 ‘한 건’을 하려고 부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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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저기서 반대론이 나오자 이 똑똑한 관료출신 장관이 “전쟁하자는 거냐”고 총대를 메고 나섰던 것이다. 그 다음에 정권 실세들로부터 “전쟁하자는 거냐”라는 말을 수차례 더 들었다. 아마도 그들 내부에선 ‘괜찮은 반격 논리’로 평가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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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보다 한술 더 뜨는 관료들이 있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정부 내에서도 알아주는 부동산 전문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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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생활 중 주로 이 분야를 맡아와 지식과 감(感)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지금은 부동산 공적(公敵)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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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코드 정책에 앞장서 총대를 메 온 결과다. 비웃음을 흘리며 야당과 싸우는 모습은 여당 정치인보다 몇 술 더 뜬다. 그를 아는 인사들은 “사람이 너무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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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전 청와대 정책실장·경제부총리·교육부총리는 알아주는 세제(稅制) 전문 관료였다. 그런 사람이 노무현 정권에 발탁되자 발 빠르게 친노(親盧) 인터넷 매체와 저녁 회식 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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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과 술·밥 먹지 말라는 정권의 엄명이 시퍼럴 때였다. 당시 한 여권 중진 정치인은 김 전 부총리를 보면서 “우리 정치인들은 족탈불급(足脫不及)”이라고 했다. 그 후 김 전 부총리는 자신이 불과 며칠 전에 발표했던 정책도 180도 뒤집으면서 대통령과 코드를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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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사람들 사이에 시장경제와 경제성장을 중시하던 경제관료였다고 기억돼 있다. 그가 OECD 대사로 나가더니 반대로 분배형 스웨덴 모델에 대한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대통령 입맛에 정확히 맞았는지 승승장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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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예산통 관료였다. 그가 정권이 바뀌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발탁되자 입시정책을 놓고 대통령과 맞서 있던 당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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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업무분야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총대를 메고 나섰다. 1100조원이 든다는 ‘2030 복지국가 계획’이란 것을 주도한 것도 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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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희극과도 같은 동북아균형자론을 앞장서 변호했던 것도 외교관료들이고, 갑자기 자주파로 등장한 것도 외교관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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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미연합사 해체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직업군인들이고, 정권이 바뀌자 눈치 빠르게 공안 파트를 없애다시피 한 것도 정치감각의 귀재인 검사들 스스로가 한 일이다. 대통령 한 명 바뀌면 나라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관료들이 총대 메고 앞장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은 관료집단이 나라의 중심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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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관료에게 대통령은 ‘승진시켜 주는 사람’이다.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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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시켜 주는 사람이 하라면 그게 무엇이든 정치인보다 더 앞장서서 총대 메고 나선다. 외국 관료도 승진을 원하지만 이렇게 제 영혼까지 팔면서 달려들지는 않는다. 인간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해도 도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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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에 또 정권이 바뀌면 그 정권 앞에서 지금의 처신을 180도 뒤집고 총대 메고 나설 관료들이 광화문, 서초동, 과천에서 대기하고 있다. 틀림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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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외교·군사 모든 면에서 국정이 엉망이 되고 있는 것은 위정자의 꼭두각시 노릇을 앞장서 하는 관료들의 책임도 크다. 101년 전 장지연(張志淵) 선생이 “돼지와 개만도 못한 대신(大臣)들”이라며 토한 울분이 생각나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