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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미치겠네
있으면 뭐하나
쓰지를 못하는데...
현금이 최고다 현금이 최고.
억대 거지가 중얼거리는 것을 시처럼 만들어 봤다. 이 거지는 재산이 자그마치 20원은 된다. 강남에 괜찮은 아파트가 한 채 있는데 값이 20억원 가까이 된다. 오래 전에 사 두었는데 주변이 개발되고, 땅값이 오르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떼돈을 벌었다.
20억대 거지는 고민이 많다. 팔자니 아까운 집만 한 채 덜렁 가지고 있다. 직장은 그만두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돈 한번 화끈하게 써보지 못한다. 나이도 60이 넘었다. 물론 아파트는 전세다. 그뿐이 아니다. 몸도 아프다. 늘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그의 고민은 이렇다. 아파트를 팔아서 돈을 마음껏 써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한다. 아파트를 팔 경우 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세금으로 다 내기가 정말 아깝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워서 팔수가 없다고 한다.
필자는 그 거지에게 말했다. 세금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아파트를 팔아서 돈을 쓰는 게 더 현명하지 않느냐고 했다. 아무리 큰 건물이 있고, 땅이 있어도 당장 내가 쓸 돈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그는 고개만 갸우뚱 했다. 돈을 쓰기는 써야 하는데 세금 내기는 아깝고...
우리 주변에는 억대 거지들이 수두룩하다. 재산만 억대를 가지고 있을 뿐 돈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는 한심하고 불쌍한 인간들이다. 직장 다니며 목숨 걸고 집은 한 칸 마련했지만 막상 퇴직하고 나니 쓸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저 땅문서, 아파트 문서만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억대 거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들이다. 못난 사람이 아니라 ‘못난 놈’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한 때 ‘줘도 못 먹나?’하는 TV광고가 인기를 끈 일이 있었다. 예전의 ‘줘도 못 먹는 놈’이나 요즘의 ‘있어도 못 쓰는 놈’이나 그놈이 그 놈이다. 한마디로 답답한 인간들이다.
돈은 쓰는 사람이 임자다. 많이 쓰든 작게 쓰든 쓰는 사람이 최고라는 뜻이다. 20억원짜리 아파트를 두고도 궁색하게 사는 사람보다 집 없이 한 달에 2백만원을 벌어 쓰고 싶은데 쓰는 사람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물론 사람이 죽을 때 자기가 번 돈을 가지고 갈 수 있다면, 큰 아파트도 메고 갈 수 있다면 억대 거지가 더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을 다 두고 가야 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세상에 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 잠시 사용하다 죽을 때 놓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답은 나와 있다. 억대 거지로 살지 말자는 것이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처분해서 당당하게 세금도 내고, 좀 멋있게 쓸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억대 거지의 누명(?)을 빨리 벗어버리자는 것이다.
얼마 전 점심 식사를 하며 가슴에 와 닿는 얘기를 들었다. 아들 네 명을 의사, 교수 등으로 잘 키운 노인이 60대에 병으로 죽게 됐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가서 위로 겸 농담 겸 한마디 했다. “야, 너 수십억 되는 재산을 두고 어떻게 죽니?”라고 했더니 노인 왈 “써보지도 못하고 돈만 모은 게 정말 후회된다. 내가 왜 집사고 땅사서 쌓아 놓기만 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