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넘어갔다. 주도권을 상실했다.
그런데 진보개혁진영 인사들 상당수는 여전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런 이유이다. ‘21세기 첨단 지식기반 산업시대에 땅 파먹는 19세기식 토목공사 마인드를 앞 세운다’며 철학의 부재, 이 부분을 드는 것이다.
철학의 부재 문제는 통일부, 여성가족부 폐지를 구실로 삼기도 한다. 타당하고 일리 있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물론 반대도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훗날 ‘기대’대로 이명박 정부가 실정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원성을 사게 되겠지.
그러나 반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하려는 쪽의 이니셔티브는 점점 커진다.
이니셔티브를 가져오기가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가져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의 심판을 통해 정권을 탈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정권을 안겨주는 국민이 아니다.
사실 정권을 쥔 세력
이 반대 정파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일은 흔치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외환위기 유발과 같은 엄청난 실정을 감행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했다. 최악의 ‘정치적 굴욕’을 당한 노무현 대통령, 여전히 당당하다. 지금도 정권 넘어간 엄청난 책임을 남 얘기 하듯 말하고 있다. 돌아오는 총선의 전망은 어떤가.
호남 말고 그 어떤 지역에서 희망이 있나. 정권 뿐 아니었다. 진보개혁진영의 정치적 토대마저 완전히 망실해버릴 위기에 놓였다.
그 위기의 해결사로 한나라당 출신 인사가 나섰다는 점, 더 큰 비극이다. ‘정치적 굴욕’, 그래서 과하지 않은 표현이다.
물론 이 문제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한나라당 진영이 지난 5년을 알차게 가꿔왔다는 점이다.
허상이든 실상이든 ‘경제 살리는 당’을 자처하며 국민에게 신임을 얻어왔다. 그리고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국민들이 정도를 넘어선 (한나라당에 대한) 과잉 기대를 했다’고 보는 이들이 적잖다.
이 역시 일리 있는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도대체 집권세력은 뭐 했나’라는 의구심을 반사적으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잘못된 정책’이라 평하는 것조차 사치스럽다. 낡고 유치한 개발시대 때 공약이기 때문이다.
또 경제 회생책이라고 꺼내는, 친기업적 아니 친재벌적 정책들 역시 ‘과연 저것을 방치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퇴행적이다.
또 언론자유를 위한다며 신문법을 없앤다 해놓고, 방송을 통제하는 등 새로운 방식의 언론통제 술수를 꾸미는 이중성 역시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야당이 될 당들은 ‘당연히’ 이것을 비난한다.
하지만 비난만 한다. 또 비난의 강도를 높일 모양이다. 유시민 의원 같은 사람은 ‘우리가 당한만큼 돌려주겠다’라는 말을 한다. 한심하다.
물론 지난 날 한나라당의 발목잡기식 반대논리는 ‘철학의 부재’, ‘얕은 정치공학적 술수’에 기초한 ‘천박한 야당성’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그러는 것은 으레 ‘야당이 그럴 수 있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야당 되면 너희도 각오하라’는 말을 내뱉은 점은 상고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의 내뱉고 안 내뱉고는 하늘과 땅 차이란 이야기이다. 내뱉음으로써 ‘야당으로서의 본분 그 이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국민들이 앞으로 ‘새 야당’의 여당 비판 또는 반대 논리를 순수하게 받아들일까. 비판과 반대논리를 야당이 과잉적으로 쥘 필요가 없다. 언론과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한 것이다.
돌아봐야 한다. 자신들의 지난 날 승리의 비결을. 김대중 후보가 15대 대선에서 승리한 기저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서의 신뢰감’이 있었다. 이 신뢰감을 국민에게 심어줬다는 얘기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권 기간 내에 ‘IMF체제 졸업’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래서 정권 재창출을 도모했다.
물론 당시 대선 승리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서민 출신이니 서민의 아픔을 다독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한 몫했을 것이다.
모름지기 정치를 하려는 이들이라면 대안 세력화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옳다. 따라서 선명한 반대세력화 보다 시급한 것이 내실 있는 대안세력화라는 점이다.
지금 야당 될 여당에게 ‘대안세력화 하기 위한 로드맵’이 있나. 없다면 큰일이다.
이명박이 아닌 허경영과 자웅을 겨뤘던 민주당의 신세를 보라. 참담하다. 그들은 지난 5년 내내 ‘노무현 씹기’에 혈안이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야당성을 회복했고 호남 안에 팽배한 ‘반 노무현 정서’에 기대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쥐었다.
물론 ‘호남 안에서’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국 정당화에 실패했다.
집권세력으로서의 자질에 있어서는 허경영 수준으로 폄하 받았다.
이들은 총선에서 호남 몇 석 건지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을지 모른다. 새겨둬야 한다. 이게 남 얘기일 수 없다는 점을.
이명박 정부의 앞날은 뻔하다. 서민경제의 침체, 지역간 계층간 국론 분열의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등이다.
서민경제를 살리며, 국론 통합을 선도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지도자의 출현이 요구될 것이다.
그런 지도자를 배출하고 지탱하는 그룹으로 발돋움할 것인가. 이게 ‘정권 탈환’의 핵심 명제이다.
‘얼마나 집요하게 여당을 괴롭히느냐’ 이게 아니다.
김용민 /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