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다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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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뭔가 다르지 댓글 0건 조회 879회 작성일 08-02-01 11:36본문
뭔가 다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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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영훈초등학교요? 모든 학부모들의 '로망'이죠."
"이건희 회장 손자가 다닌다는데, 뭔가 많이 다르지 않겠어요?"
어떤 학부모는 로망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거론했다. 대한민국 사립초등학교 1번지로 불리는 영훈초등학교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은 이와같은 수식어를 빠뜨리지 않았다.
최근 영훈초등학교의 이름값은 더욱 높아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가 영어교육 논쟁에 불을 지피면서부터다. 영훈초등학교는 영어몰입교육으로 유명하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는 물론이고,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도 이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울 강남에서 유명한 A영어유치원 상담실장은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올해 우리 유치원 출신 2명이 영훈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고작 2명? 그래도 자랑거리였다. 영훈초등학교는 소문도 몰고 다닌다. 소문이 많은 만큼, 사실과 다른 말들도 많다. '돈 다발을 안겨야 입학이 가능하다', '입학할 아이는 물론이고 부모도 영어 면접을 본다', '부모 직업이 최소한 의사, 변호사는 돼야 한다', '교문부터 철저히 외부인을 통제한다' 등등.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 각각 다른 수업이 동시에
사실 확인을 위해 지난 28일 서울 미아동에 있는 영훈초등학교에 '잠입'해 봤다. 소문과 달리 외부인 통제는 없었다. 학교 건물 출입구에는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특별히 경계하는 사람은 없었다. 맥이 풀렸다. 이번엔 정식으로 취재를 요청하고 29일 다시 방문했다. 심옥령 교감이 직접 안내를 맡았다.
원어민 교사 : "Who can spell sugar?"
학생 : "s-u-g-e-r."
원어민 교사 : "close, almost."
원어민 교사 : "Where would you like to go?"
학생들 : "France" "Australia"
원어민 교사 : "anyone else?"
학생 : "Egypt!"
1학년 교실에 들어서니 원어민 교사와 학생 18명이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교사를 중심으로 책상 대신 바닥에 모여 앉아 있었다.
교실 바닥은 푹신한 카펫이다. 갑작스런 기자들의 등장에도 아이들은 놀라거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원어민 교사와의 대화에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한 교실에서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의 각기 다른 수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게 독특했다. 한반에 대략 36명이지만 수업은 18명씩 나뉘어 진행된다.
한 교실에서 동일한 시간에 다른 수업이 진행되면 혼란스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화식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시끄럽지 않았다. 물론 체격과 목소리가 큰 5, 6학년의 교실은 분리돼 있다.
"교사들의 상담과 예절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타인을 배려하는 학습 자세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전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린 수업을 하는 셈이지요."
심 교감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1학년 교실 한쪽에는 학생들이 영어로 쓴 그림일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연필로 또박또박 새겨진 영어일기에는 오탈자는 물론 틀린 문장이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영어로 작문을 하면 원어민 교사가 직접 검토를 합니다. 틀린 건 교정을 하고, 마지막엔 꼭 정확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쓰게 합니다."
심 교감은 학습 발달 내용이 담긴 학생들 개별 파일을 하나 꺼내 보여줬다. 파일의 앞부분에는 학생이 직접 쓴 비뚤한 영어가 가득했지만 뒤로 갈수록 반듯했다. 학습 진행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96년부터 영어몰입교육... "영어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영훈초등학교에는 현재 한국인 교사 29명, 원어민 교사 31명, 그리고 음악·미술 등 교과 담당 교사 10명이 근무하고 있다. 한 학급마다 한국인 교사와 원어민 교사가 1명씩 배치돼 있다. 4학년이 되면 필기체로 영어 작문 교육을 실시한다. 하지만 국어 같은 과목은 철저히 우리말로 교육한다. 이 학교에는 한옥 구조의 예절실도 갖추고 있다. 실내체육관과 음악 미술실도 있다.
심 교감은 "영어를 매개로 과학이나 사회 같은 공부를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지 영어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며 "우리나라 교과 과정을 철저히 지키고, 아이들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심 교감은 "입학할 때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모두 다르지만 개별 특성에 따른 지도와 학습을 하기 때문에 실력차이는 금방 극복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심 교감은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들 영어 면접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 '열린 교육'으로 관심을 모았던 영훈초등학교의 교실은 독특하다. 우선 복도와 교실 사이에는 벽과 문이 없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돼 있고 열려 있다. 환경도 교실마다 다르다. 영훈초등학교에는 각 학년당 4개 반이 있다. 책상 배열과 수업진행 방식도 교실과 교사마다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모양으로 꾸며진 교실은 없다.
1학년 교실에 영어 단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면, 4학년에는 동물 모형이, 5학년에는 아이들이 협동해서 만든 과학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또 운동장에는 푹신한 인조잔디가 깔려 있다.
심 교감은 "교사들의 개성과 각각의 수업 방식을 존중하고 있다"며 "같은 컨텐츠로 수업은 하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 모두 다르다"고 강조했다.
영훈초등학교는 지난 96년부터 영어몰입교육을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안착된 건 아니다. 정창진 교장은 "초기 2, 3년 동안 시행착오는 물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후 하나의 시스템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늘 연구해서 업그레이드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부모 "학비 비싸지만 사교육 생각하면..."
조기 영어교육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에게 영훈초등학교는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학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1분기(3개월) 등록금은 168만원이다. 여기에 교복, 스쿨버스, 급식비를 따진다면 1년에 교육비로 약 800만원 정도가 든다. 웬만한 사립대학 1년 등록금과 비슷한 규모다. 여기에 따로 사교육을 시킨다면 그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학교 측은 "대부분 부유층의 자녀들이 입학한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 손자도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입학 전형은 소문처럼 영어 면접을 실시하지 않는다. 특별한 자격 요건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 설명회를 거치고 추첨을 통해 입학생들을 뽑는다. 올해의 경우 입학 경쟁률은 약 7대 1이었다.
학교 측은 강남과 강북 지역 자녀들이 반반이라고 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강남지역 아이들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통학 때문에 가까운 강북 지역으로 이사했던 사람들이 아이가 크면서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창진 교장은 "부모 직업으로 따진다면 대학 교수 집안이 많다"고 밝혔다.
기자가 방문했던 29일은 영훈초등학교 신입생 예비 소집일이었다. 학교를 찾은 많은 학부모들은 "학비가 비싸긴 하지만 사교육으로 영어 과외를 받는 걸 생각하면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학부모들은 "학교에 보내는 동안 과외를 시키지 않을 생각인가"라는 물음에는 "지켜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이선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수석부회장은 "영훈초등학교와 같은 사립학교를 단순히 좋다, 나쁘다라는 구분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며 "다만 일부 특권층을 위한, 특권층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체계라면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일부 사립 초등학교에서 선진국의 적성 특성화 교육을 도입하는데, 국가가 담당하는 공교육도 투자를 통한 다양한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75개 사립 초등학교가 있고, 학생 4만 5000여 명이 다니고 있다. 이중 40개교가 서울에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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