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말은 주인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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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실한 말 댓글 1건 조회 878회 작성일 08-02-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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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지켜보면서 말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다름 아니라 우리가 눈만 떨어지면 사용하는 말이 기이한 마술을 부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때문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불공단 전봇대'와 '나훈아 괴담'해명 기자회견이다.두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 보면 하나의 코드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탁상행정의 표본 내지 상징이 돼버린 '대불공단 전봇대'는 당선인의 지적이 있고 난 뒤 단 이틀 만에 뽑혔다.
 
전봇대를 놓고 돌아간 한동안의 보도 열기는 당선인의 말을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마법의 언어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던 '나훈아 괴담'에 대해 본인이 직접 나서 해명 기자회견을 했다.
 
원고 없이 한 시간 정도 일방적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 대해 언론은 '공연보다 더 빛난 한편의 드라마'로 압축 요약함으로써 후폭풍의 향방을 당사자의 카리스마와 타고난 대중적 감각으로 몰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토록 끈질기게 세상을 떠돌던 괴담이 어느 순간 태를 바꿔 당사자의 카리스마를 부각시키는 후광의 언어로 둔갑한 셈이다.

두 가지 사안이 지닌 외견상 공통점은 말이 지닌 파괴력과 영향력이다.여러 해 동안 개선되지 않던 일이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해결되는 장면
 
,그리고 세상을 떠돌던 온갖 끔찍스런 괴담이 당사자의 강렬한 해명에 힘입어 오히려 그에 대한 신드롬을 불러오는 광경은 사람들 입을 벌리게 만드는 마술을 무색케 만든다.

당선인의 말과 카리스마를 지닌 대중가수의 말이 지닌 영향력과 파괴력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말에 대한 왜곡된 믿음을 키워나간다.
 
말을 하는 당사자의 위상에 따라 말의 영향력과 파괴력이 달라진다는 믿음.
 
그것을 통해 말의 본질은 왜곡되고 말의 계급은 강화된다.말의 내용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말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믿기 때문이다.
 
 
바로 그와 같은 사회적 속성 때문에 '말발'이 먹히는 위치를 점하기 위한 생존경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곧 말이고,말이 곧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됨으로써 말의 독자적 진실성이 보기 좋게 무시당하는 것이다.

말의 본질에는 계급도 없고 성향도 없다.오직 객관적 진실만 존재할 뿐이다.말에서 야기되는 모든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칼이 되고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방패가 된다.담는 그릇에 따라 판이한 쓰임새가 나타나는 것이다.

요컨대 말의 영향력과 파괴력에 압도당하는 사회는 위험하다.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사회는 더욱 위험하다.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뽑는 것으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된 게 아닌데도 말의 영향력만 부각시키니 입주자들의 불만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체가 입주하면서 야기된 공단 전체의 인프라 리모델링이 문제의 핵심인데도 상징화된 전봇대 뽑기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나훈아 괴담'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진지한 자성과 성찰의 기회를 건너뛰거나 박탈하며 문제의 흐름을 카리스마와 신드롬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더더욱 곤란한 일이다.
 
진정한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퍼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되는 사회,다시 말해 진실의 언어가 홀로 살아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