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의제’의 국가정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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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남 의제’ 댓글 0건 조회 702회 작성일 08-02-0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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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행태와 정책기조를 보면 목표와 수단 사이의 모순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①이 당선인과 인수위는 국민통합을 이루고 복지수준을 높이겠다면서도 친기업적 행보에 치중하고 있다.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규제 폐지·완화는 넘치는데, 노동·복지·여성·환경 등 분야는 찬밥 신세다.
 
 또 이 당선인과 인수위는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만 주로 만난다. 국민을 어떻게 통합하겠다는 건가.

②인수위는 통일부 폐지안을 발표하면서 ‘통일정책의 보다 효과적인 추진’을 이유로 제시했다. 이런 논리라면 산업자원부와 교육부도 없애야 산업·자원정책과 교육정책이 더 잘 추진되지 않을까.

③이 당선인과 인수위는 대학입시 자율화, 특목고·자사고 대거 신설, 영어 몰입교육 강화 등의 교육 개혁안을 제시했다. 목표는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강화다.
 
그런데 학교·학생들의 성적 경쟁과 줄세우기를 크게 부추길 이들 정책이 어떻게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건가. 학원가는 벌써부터 시장 확대를 예상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④이 당선인은 연 6~7% 경제성장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러면서 한반도 대운하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성장률을 높이려면 시장경제 원리에 맞고 새 성장 동력 확충에 기여할 사업에 초점을 맞추는 게 당연하다. 대운하가 과연 그런 사업인가.

⑤새 집권세력은 종합부동산세 과표 기준을 높이고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의 조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이미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집값 안정과 모든 국민의 내집 마련이라는 목표는 어떻게 이룰 건가.

목표와 수단 사이의 이런 모순을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 좋은 사례가 있다.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방안’이 그것이다.
 
이 안을 가장 환영할 사람은 자녀를 영어권에 조기유학 보낸 이들이다. 조기유학의 가치를 인정받고, 병역과 이중국적 문제를 해결하며, 귀국 뒤 일자리까지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1석3조의 묘안이기 때문이다.
 
인수위가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이 안은 전형적인 ‘강남 의제’다. 조기유학열의 본거지인 서울 강남지역의 요구 수준에 맞춘 정책이라는 뜻이다. 이 당선인과 인수위가 내놓은 다른 정책들도 강남 의제와 거의 일치한다.

강남지역 학교·학원과 학부모들은 일관되게 성적 경쟁 강화를 주장해 왔다. 또 주요 대학들은 입시요강을 누더기로 만들면서까지 이 지역 학생을 유치하려 애써 왔다.
 
이를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이 대입 자율화다. 강남은 각종 규제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곳이기도 하다.
 
 종합부동산세 대상 가구의 40% 가까이가 이 지역에 몰려 있는 데서 보듯이 자신이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게 한 원인이다.
 
규제와 국가복지 모두 최소화하기를 바라는 이 지역 정서는 새 집권세력의 태도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세계화와 미국에 친근한 반면, 한반도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한 점도 양쪽이 서로 통한다.

강남지역은 면적으로는 전국의 0.01%, 인구는 3%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과 명문대 입학생 점유율에서는 전국의 10% 안팎을 차지한다.
 
고위공직자와 기업체 임원들의 주요 거주지이기도 하다. 새 집권세력이 강남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국민 속’이 아니라 ‘국민 위’에서 내려다보겠다는 선언과 같다.
 
국민 전체를 고려해야 할 정책 목표와는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가 강남을 적대시한 것처럼 보인 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새 집권세력이 강남 의제를 적극 국가 의제로 바꿔나가려는 것은 훨씬 더 큰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