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모르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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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장 댓글 0건 조회 771회 작성일 08-02-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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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고 미뤘던 약속이 성사됐다. 전화로 안부를 물을 때마다 “언제 소주 한 잔 하자”고 약속했는데 3년여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한잔 두잔, 잔이 오가고 ‘새 정부’가 안주감으로 오른다. 정부 산하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인지라 자연스럽게 공무원 이야기가 나온다.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너무 자주 바뀐다. 기껏 가르쳐 현황을 알게 해줬더니 다음주에 또 보직이 바뀐단다. 공무원이 다 그렇지. 현장을 진짜 잘 모른다. 탁상공론의 온상이다….
 
소주 한두 병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안주다. 소주병도 하나둘 늘어난다. 결론은 이거다. 새 정부에서는 현장을 아는 사무관이 많이 채용됐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도 그동안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공직사회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999년에 개방형 직위제를 도입했다.

 

전문성이 특히 요구되거나 효율적인 정책수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직위에 공개경쟁을 거쳐 직무수행 요건을 갖춘 사람 중 최적격자를 임용하는 제도다.

 

 시행 10년이 되는 개방형 직위의 비중은 점차 확대됐고 적용 직위도 애초 국장급 이상이었으나 최근엔 과장급까지 확산됐다.

 

도입 당시의 좋은 취지와는 달리 개방형 직위제(공모직 포함)는 많은 폐단을 드러냈다. 참여정부 4년간 소속부처 국장급도 지원할 수 있는 공모직은 해당부처 출신 인사가 70% 이상을 차지했다.

 

오죽했으면 ‘짜고 치는 인사’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개방형 직위나 공모직위는 공개 경쟁을 거쳐 최적임자를 뽑아야 할 자리다.

 

 공모라는 절차에 관료사회 특유의 연공서열이라는 이해관계가 끼어들다 보니 인사는 퍼즐 끼워 맞추기 식이 된다.

 

원칙을 중요시하는 참여정부의 청와대나 중앙인사위원회가 현업 부처의 인사안을 ‘NO’ 하는 횟수가 잦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개방형과 공모직 임용에 평균 55일 이상 소요되는데 적격자가 없어 재공모 과정을 거치면 현안이나 정책을 결정을 해야 할 현업 부처의 국장급 자리가 몇 개월씩 공석으로 있는 일도 허다하다.

 

 과장급까지 범위가 확산된 개방형 직위에도 단점은 있다. 고시출신 중심의 관료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해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보지도 못하고 계약기간만 간신히 채우고 돌아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잘 적응하더라도 2년이나 3년이라는 기간에는 마음놓고 굵직한 정책 하나 세우기 어려운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방형 직위가 이력서를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거쳐가는 자리로 활용되기도 한다.

 

 정부가 오래 전부터 적용해온 인재채용 방식 중에 석·박사 특채제도가 있다.

 

특정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 석·박사급 인재를 주무관이나 사무관으로 임용하는(70∼80년대에는 석사를 사무관으로 임용) 이 제도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는 석·박사뿐 아니라 민간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를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는 채널을 확대하는 시도도 필요한 것 같다.

 

가령, 해외 에너지 개발 분야에서 일정 기간 동안 경험을 쌓았거나 전자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전문가를 야전 사령관 격인 사무관으로 임용해 공직사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고시 철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시 정원을 다소 줄여서라도 현장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사무관으로 임용하는 기회를 늘려야한다는 지인의 말이 깊이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