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참담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참담하다 댓글 0건 조회 648회 작성일 08-02-12 08:39

본문

2008년 2월 10일 밤부터 11일 새벽 사이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온 국민의 자존심이 함께 무너져 내렸다.
 
5000년 역사와 민족혼,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일부가 함께 손상된 것이다. 국보 제1호가 전소(全燒)된 것을 보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이나 처참함, 안타까움 등의 감정은 차라리 사치다.
 
 우리 민족과 우리 문화의 기품과 위용, 당당함이 불길에 사그라진 것을 보는 느낌은 비통함 그 자체다.

수도 한복판에서 늦은 밤도 아닌 저녁 시간에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국가는 나라의 모습을 제대로 갖췄다고 할 수 없다.
 
문화유산을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그것을 특별히 잘 보존하겠다는 국민적 다짐이다.
 
 그런데 보물도 아닌 국보, 그것도 제1호가 허망하게 화마로 인해 모습을 감췄다. 세계 11대 경제대국 등 경제지표상으로 선진국이라고 뽐내는 나라가 원시적인 화재에 속수무책 당하고 만 것이다.
 
수백 년 동안 갖가지 천재지변은 물론이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 전란까지 이겨낸 숭례문이 우리들의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불과 6시간여만에 자취를 감췄다. 전통과 역사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이 시대에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숭례문 화재는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소방방재청이 마련해 일선 소방서에 배포한 ‘재난 유형별 대응 매뉴얼’에 문화재 화재 부분은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매년 한 차례 문화재 화재 진압 훈련을 하면서 지도를 놓고 소방차 접근 방법 등을 구상하고, 문화재청 직원들의 안내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이 별도의 조치 없이 3시간 가까이 숭례문에 물만 쏟아 부은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관할 소방관서에 국보 제1호의 설계도면조차 없었다고 하니 사정은 더욱 딱하다. 불이 난 지 1시간여가 지난 뒤에야 중구청에 요청해 도면을 넘겨받았고, 1시간30여 분 뒤에야 기와를 걷어내고 불을 끄는 방법을 결정했다고 한다.
 
건물의 도면이 없고, 문화재에 대한 방재 연습도 없는 상태에서의 화재 진압은 애당초 불가능했던 것 아닌가. 화재 현장에서 문화재청 관계자와 전화로 화재 진압 방법 등을 논의했다는 부분에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나라 소방 당국인가.

2006년 4월 서울 창경궁 문정전이 방화로 문이 타고 천장이 그을렸다. 그 다음달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서장대 화재로 목조 누각 2층(19㎡)이 전소됐다.
 
 2005년 4월에는 강원도 설악산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낙산사로 번져 의상대와 홍련암을 제외한 전각 13채가 다 타버렸다. 방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같은 목조 문화재에 자동 화재탐지기가 한 대라도 설치돼 있으면 대형 화재는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요문화재 100곳 중 자동 화재탐지기가 단 한 개라도 구비된 곳은 37곳에 불과하다.
 
숭례문은 문화재청이 추진 중인 방재시스템 구축 대상 124곳에 포함돼 있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변을 당했다. 수시 화재로 문화재를 잃어가면서도 대응책 마련이 지지부진한 것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1961년 수리 당시의 보고서와 2006년 제작된 실측도면을 근거로 숭례문의 복원이 가능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찬란한 문화 유산’ ‘문화 민족’ 운운하며 선조들의 정신과 유물을 소홀히 대접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할 때다.
 
숭례문 복원에 길게는 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아예 차단막을 제거하고 흉물스러운 화재 현장을 우리 모두가 지켜보자. 창건 당시 화재를 경계하며 문의 이름 석 자를 세로로 내려 쓰신 선조들의 문화사랑 정신을 되새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