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 자존심을 불태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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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리 자존심 댓글 0건 조회 746회 작성일 08-02-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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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시민의 탄식이 가슴을 친다. 불타는 숭례문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시민의 모습이 슬픔을 더 하게 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자는 비극을 되풀이한다”는 경구를 우리는 오늘 또다시 되씹어야 한다.

낙산사의 소실에 가슴 아파했던 게 얼마 전인가.
 
창경궁 문정전과 수원 화성 서장대 불로 가슴이 철렁했던 것도 바로 엊그제 아니던가. 그런데도 문화재 보존의 문제점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던 것이다.

‘안전대책이 허술했다’ ‘초동 단계에서 실수가 있었다’ ‘대처 방법이 주먹구구 식이었다’ ‘관계 당국 간에 책임 떠넘기기를 한다’ 등등의 주장에 ‘예산이 부족했다’는 결론식 주장 역시 지난날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맞는 지적들이다. 다만 한 가지 남는 의문은 왜 그렇게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가 하는 것이다.

외눈박이 행정의 비극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는 “숭례문이 시민과 더욱 친숙하게 될 수 있도록 보행 공간을 넓히고 횡단보도를 설치해 세계적인 우리 유산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 놓겠다”고 공약했다.

문화재청의 안전 우려를 누르고 공사를 진행한 서울시는 2005년 5월 공약대로 숭례문에 대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했다. 자서전에서 자랑하고 있듯이 이명박 시장이 으쓱해 했음은 물론이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대대적 공사를 하면서도 개방을 하면 사고의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는 데는 까막눈이었다는 점이다.
 
화기감지기는커녕 아파트마다 있고 웬만한 건물마다 있는 화재경보기조차 국보1호에는 없었다. 가정집마다 있는 소화기 8대와 소화전, 그리고 저녁 8시 이후엔 무인 경비시스템 가동이 안전대책의 전부였다. 개방에만 급급한 외눈박이 행정의 결과였다.

누군들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지 않으랴. 문화재는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 주어야 할 것임을 누군들 모르랴.
 
그러나 그러려면 그만큼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도 돈을 들여야 한다는 데는 생각이 전혀 미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비극의 근본 원인이 있다. 문제의 근본은 가시적 성과에만 매달리는 외형주의와 실적주의, 그저 돌격하기만 좋아 하는 개발주의, 그리고 인기영합주의에 있는 것이다.

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 뒤늦게나마 전국 124개 주요 문화재에 대한 방재시스템 구축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구축이 끝난 곳은 겨우 4곳뿐이다. 이런 속도라면 5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이유는 예산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 해 정부 예산이 250조가 넘는 시절이다. 하려고 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번 숭례문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예산이 없는 게 아니라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부족해서 못 한 것이다.

조선의 문화는 ‘나무의 문화’라고 일컬어진다.
 
사찰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재는 대부분 나무를 재료로 한 것이다. 해서 우리가 자랑하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예술품들이 많이 탄생했지만 화재 위험 등 보존에는 취약점이 많다.

정작 방재 책임을 진 행정 당국자들은 이에 둔감하다.
 
그동안의 행정에서는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당장 성과가 나는 것보다 먼 내일에 성과가 나는 것을 중요시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저압축 성장시대의 실적주의, 속도주의, 외형주의, 어느 한쪽의 성과만을 추구하는 일면주의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것을 체질화해서 출세해온 지난날의 삶과 그 의식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시민이 이미 1년 전에 코앞에 들이대고 숭례문 방화 가능성을 경고했음에도 정작 보호책임이 있는 관리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개발주의의 부활 막아야

요즘 새삼스럽게 개발주의 신화가 부활하고 있다. 개발주의의 부활을 충동하는 데는 당연히 정치적, 경제적 목적이 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반 시민들 가운데도 자신들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던 때의 달콤한 향수 때문에 그 부활을 반기기도 한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면 개발주의야말로 환경보호나 문화재보호와는 상극이다.
 
 불 탄 숭례문을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개발주의 토목공사에는 솔깃해 한다면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을 것이다. 문득 우리나라 최고 목조 건물의 하나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안위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