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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잿더미가 되고서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복원 이야기가 나온다. 국무회의가 거론하고, 정치권이 꺼내고, 문화재청이 복원 계획을 내민다.
이명박 당선인은 “국민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이른 시간 내 복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 복원 운운하는 게 급한가.
복원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숭례문 개방, 부실한 방재대책, 경비, 진화 문제 등 화재 발생에서 전소에 이르기까지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낱낱이 밝히는 일이다.
원인이 밝혀져야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고, 그래야 이런 참화가 되풀이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오두막이 불타도 자초지종을 따지는 게 우선인데, 국보 1호가 오두막만도 못하진 않을 게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 시점에서 복원 운운하는 것은 책임있는 자들이 자신에게 떨어질지 모르는 책임을 모면하려는 술책으로만 보인다.
문화재 관련자들의 우려에도 대책 없이 숭례문 개방을 밀어붙였던 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었고, 방재 대책 마련 등과 관련해 지자체를 지도해야 했던 것은 문화재청이었으며, 정부나 지자체의 문화재 행정을 감독하는 책임은 국회에 있었다.
사실 대형 사고가 터지면, 한동안 울분을 토하다가 슬그머니 보상 또는 수습으로 관심의 물꼬를 돌리는 게 정치권과 관가의 수법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재발 방지 근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던 게 우리 현실이었다.
특히 이 당선인의 ‘국민모금 방식’ 복원 제안은 차라리 ‘허무 개그’이길 바란다.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하는 성금으로 복원하는 게 의미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의 제안에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바로 맞장구를 쳤고, 서초구가 재빨리 덩달이로 나섰다. 왜 정부나 지자체의 잘못으로 전소된 숭례문의 복원을 국민이 맡아야 할까?
국민은 청소부가 아니다. 정부와 재벌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재앙의 뒤처리도 국민이 도맡았다. 도대체 무슨 염치로 그런 제안을 하는가.
거듭 당부하거니와 지금은 복원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
문화재 보존 정책부터 문화재의 관광상품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문화재 관리 실태부터 방재체계에 이르기까지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내, 교훈을 삼아야 할 때다.
아직 우리에겐, 화재나 도난 손괴로부터 지켜야 할 문화재가 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