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시장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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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非)시장 댓글 0건 조회 871회 작성일 08-02-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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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누가 다스릴까. 신이 다스릴까, 아니면 인간이 다스릴까.
 
세상을 다스리는데 어떤 법칙이 작동하는 것일까.
 
종교에 따라, 철학에 따라 모두 답이 다를 것이다.
 
또 시대별로도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종교와 철학을 떠나 속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의 질서가 있다고 한다.
 
 '시장'과 '정부'가 그것이다. 때로는 시장이 우위에 섰고, 때로는 정부가 앞장을 섰다. 시장을 중시하는 국가도 있고, 정부가 주도하는 국가도 있다.
 
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가격)에 의해 세상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즈는 정부를 대표선수로 내세웠다.
 
우리나라를 봐도 주전선수가 그때 그때 교체됨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참여정부에서 주전으로 뛰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시장이 주전으로 교체되고 있다.
 
 대기업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꼭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말해 이 점을 확인시켰다.
 
기업들과 많은 국민들은 "방향을 잘 잡았다"고 환영하고 있다. 국민들은 향후 5년이 선진 일류국가로 가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선언에 설레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이명박 정부는 출범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가 26일 무산됐고, 앞서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중도 하차했다.
 
 지금도 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내정자에 대해 교체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강부자'(강남 땅 부자) 내각이라는 블랙유머가 떠돈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도 적지 않은 진통이 따랐고, 영어 공교육에 이르러서는 국민들이 짜증을 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 대통령측도 할 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일어난 데는 이 대통령과 측근들이 시장을 움직이는 원리와 비(非)시장(정부)의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가 조금 다르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시장에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면 된다.
 
 물론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생산이 이뤄지고 가격이 신호를 준다.
 
비시장의 세계에서도 정부가 국민들에게 정책을 제공하는 점은 비슷하다. 그러나 작동원리는 시장과 다르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도 작동하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원리는 '정치적 과정'이다.
 
여기서의 플레이어는 대통령과 행정부, 국회, 정당, 이익단체, 시민단체, 언론 등이다.
 
그 중 대통령이 가장 탁월한 플레이어지만 '유일한' 플레이어는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가장 좋은, 아니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정책을 내놓는다고 해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정치적 과정에서는 국회와 정당, 이익단체, 여론 등의 협조와 지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과정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지 오늘로 딱 사흘. 아마 지금이 세상을 다스리는 질서를 곰곰히 생각해볼 최적의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