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죽을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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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곱 가지 죽을 죄 댓글 0건 조회 796회 작성일 08-03-1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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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멸종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

위험한 발상처럼 들리지만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은 채 각국에서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 주체는 외계인이나 다른 생물이 아닌, 바로 인간들이다. 왜 인류 자신을 파괴하자는 자기부정의 논리가 나오는 것일까.

자발적 인류멸종운동(VHEMT·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은 2001년 미국인 레스 나이트가 창립했다. 안심해도 좋다. 그는 생화학무기나 핵무기를 이용한 대량살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나이트는 인류가 출산율을 0에 가깝게 줄이자고 말한다. 엄격히 피임하고, 정녕 아이를 기르고 싶을 경우에만 기아에 허덕이는 저개발국가 아동을 입양하라고 권한다.
 
이로써 몇 년 안에 범죄율은 현격히 줄어들고, 자원은 풍요로워지며, 자연은 깨끗해지리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눈치 챌 수 있겠지만, 그가 말하는 ‘멸종’은 단지 비유일 뿐이다. VHEMT의 진짜 표어는 다음과 같다.
 
 ‘오래 살다 사라지자.’ 지금처럼 인구가 증가를 거듭할 경우 인류는 머지않아 전쟁이나 환경 파괴 등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멸종하게 될 것이므로, 이를 피해 ‘가늘고 길게’ 평화롭게 다른 종(種)과 공존하는 길을 택하자는 것이다.

최근 교황청이 제시한 ‘새로운 7대 죄악’ 목록을 접하고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운동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오래 살다 사라지자’는 VHEMT의 이념이 같지는 않겠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로마 시대인 6세기 그레고리 교황은 ‘7대 죄악’을 열거했고 문호 단테는 14세기 ‘신곡’에서 이를 ‘일곱 가지 죽을 죄’로 정리했다. 교만 탐욕 식탐 색욕 분노 시기 나태가 그것이다.

‘살인이나 강도’ 같은 현실적 범죄 목록이 아니라 인간을 나락으로 이끄는 원초적 악덕들을 제시했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일곱 가지 중에서 대부분은 개인이 자신에게 적당한 범위를 넘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죄악으로 규정했다.

21세기의 ‘신 7대 죄악’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유전자 실험’이나 ‘낙태’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나머지인 환경 파괴, 윤리적 논란을 가져오는 과학실험, 사회적 불공정 등은 개별 인간을 넘어 인간 집단의 영향력이 적절한 영역을 넘어설 경우의 파괴적인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틀린 것으로 판명된 적은 없다. 이른바 ‘녹색혁명’으로 파국이 지연돼 왔을 뿐이다. 파국이 다가오면 경보가 울릴 것이다.

경보는 식량 가격 급등이란 형태로 올 수 있으며, 처음에는 분명치 않다가도 점차 명확해질 것이다. 오늘날 세계 식량 가격의 불안정은 그 첫 번째 전조일 수도 있다.

오늘날 많은 과학자와 석학이 인간을 ‘지구의 암(癌)’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암’이라는 말은 ‘이상(異常) 증식’의 폐해를 지적할 때 사용하는 말일 뿐이다.
 
과도 증식해 자신의 모체인 지구를 파멸로 이끌지 않는 한,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거대한 정신과 물질의 성과를 무(無)로 되돌려야 한다고 감히 말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얼마나 먹어 대고 즐기며 얼마나 많은 후손을 낳을 때 파멸을 피하고 길게 누릴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