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육사 신입생 34%가 '주적은 美'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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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좌파집권의실상 댓글 1건 조회 1,217회 작성일 08-04-0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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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교장이 기획한 '군(軍)대안교과서' 년전 상부 지시로 외부에 못나가


2004년 육사 신입생 34%가 '주적은 美' 대답

김충배 前교장 "이렇게 가르쳐선 안돼" 추진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8.04.04 00:53 / 수정 : 2008.04.04 06:52


 김충배 육군사관학교 교장 2004년 1월, 김충배(金忠培·사진) 육군사관학교 교장은 숨이 턱 막혔다. 육사에 들어올 가(假)입교생 250여 명에게 무기명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대답했고, '북한'이란 대답은 33%에 그쳤다. "장교가 되겠다고 사관학교를 지원한 학생들이 이 정도라니…." 같은 해 국방부 정훈기획실의 '입대장병 의식 성향 조사'는 더 기가 막혔다. 75%가 반미(反美)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장병은 단 36%였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그는 생도들과 면담하고 이유를 분석했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는 대답들이 많았다. 김 교장이 서독 광부, 베트남전 장병, 중동의 산업역군들에 대해서 얘기하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기 일쑤였다. 그런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학교가 선택하고 있다는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구해 보고 그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북한은 슬쩍 비판하는 척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아니다"고 판단한 그는 직접 나섰다. 교내 강당에 생도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여러분들은 50·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아는가?" 그는 비장했다. "1960년대 서독에서 시체를 닦던 간호사와 지하 1000m 아래서 땀을 흘린 광부들 덕에 오늘날 우리가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는 '눈물의 강의'를 이어갔다. 때론 강당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그의 강연 내용은 '육사 교장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퍼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대한민국과 국군의 정통성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했다. 생도들은 물론 군 장병 전체를 다시 가르쳐야 했다. 그는 결심했다. "제대로 된 현대사 교과서를 만들자!" 조영길(曺永吉) 국방부장관에게 이를 보고했다. "예산 1억원이 필요합니다." 조 장관이 대답했다. "그런 중요한 일에 1억 가지고 되겠습니까? 2억원을 편성해 드리지요."


김희곤 안동대 교수,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 8명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장병 정신교육 발전 연구위원회'가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 평범한 교범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쟁점이 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상당히 전문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강조했으며,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실히 했다. 6·25의 발발 원인이 북한과 소련에 있음을 명시한 뒤 전후(戰後) 경제 발전의 의의를 중요하게 기술했다. 그러면서도 5·16을 '군사정변'이라 표현하고 "군인 스스로 정치군인으로 등장할 때, 그는 이미 진정한 군인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집단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1년이 흘렀다. 군(軍)의 '대안 교과서' 집필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새 국방부장관은 윤광웅(尹光雄)씨로 바뀌었다. 그런데 완성 직전인 2005년 2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장관에게 '정신교육 자료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집필을 끝낸 뒤 책을 장병들에게 배포하지 말고, 육사 생도 교육에만 한정해서 활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몇 달 뒤에 가까스로 '사실로 본 한국 근현대사'란 제목으로 육사 내부의 교재용 책이 나오긴 했지만 육사 바깥에선 구할 수 없게 돼 버렸다.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출간되기 3년 전의 일이다.


현재 한국국방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김충배 전 교장은 "그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들은 똑똑하고 실용적인 사고를 가졌다. 어른들이 잘못 가르쳤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강당에서 가르쳤던 육사 64기 생도들은 지난달 임관됐다. 윤광웅 전 장관은 3일 통화에서 '책 출판 보류' 건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