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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심상정 노회찬의 당선가능성, 특히 노회찬의 경우 확실성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내 경우엔 심노의 당선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기실 그 의미도 크게 보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내가 쳐다보던 곳은 경남 사천, 강기갑이었다. 많은 당원들이 그랬으리라.
강기갑의 당선, 심노의 낙선은 진보정당이 갈 길을 말해준다 강기갑의 당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사변이다 언론에서는 친박연대니 뭐니 하면서 한나라당의 분열을 말하는데 가소로운 일이다. 여의도에서만 돌아다니는 한국 정치기자들의 천박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강기갑당선/심노낙선은 그저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아쉬운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한 쪽의 당선과 한 쪽의 낙선은 별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이 의미를 제대로 짚지 않고선 전진할 수 없다.
1. 대한민국 진보 지식인 총출동, 먹물의 패배다
심노선본에는 연일 진보 지식인들의 지지선언이 잇따랐다. 외연확장을 과시하려는 듯 영화계, 문화계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도대체 이번 총선에서 그 누구에게 이토록 많은 지식문화계 인사들이 모여들었단 말인가? 예전에도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 만큼 심노 후보의 가치가 높다는 말이다. 하지만 패배 후에는 또 다른 평가가 필요하다. 심노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지식인들의 영향력이 이 정도라는 게다.
홍세화, 그는 과연 진보신당 이남신 후보가 말한 "분당사태로 인한 대중조직의 곤란함"을 생각이나 했을까? 기회가 될 때마다 주사파 비방에만 열을 올리는 그는 또 다시 "한국인들의 자기배반"을 되뇌이고 있을테다. 진보신당 김상봉 후보는 이런 홍세화의 태도에 대해 "대중의 가능성을 볼" 것을 주문했는데, 그런 말이 통할지는 의문이다.
한 때 존경했던 홍세화에 관해 특별히 언급한 것은 그가 진보지식인들의 맹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 진보신당에서는 지역구에서 민주노동당을 이겼느니, 이 정도면 선전이라느니, 어차피 장기전이라느니 별 분칠을 다 하고 있지만 쓴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싹수조차 노랗다고 할 밖에.
심노의 인지도가 낮았던가? 심노에 대한 유언비어라도 있었던가? 심노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핑계댈 여지는 있는가?
없다. 완전한 패배다. 심노에게 총출동한 대한민국 진보 지식인들, 당신들의 완전한 패배다. 이제 당신들에겐 두 가지 길이 남았다. 대중파시즘을 운운하며 골방으로 기어들든가, 대가리 뽀개지는 자기반성을 택하든가.
2. 언제부터 진보정치가 스타정치가 되었나
선거기간 길을 다니다 보게 되는 현수막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심상정 노회찬과 함께 하는 신장식, 김웅, 등등등"
도대체 이것이 "박근혜와 함께 하는 친박연대"와 다를 게 무엇인가 난 '친박연대'라는 말이 언론이 만든 정치용어인줄 알았다. 강당에서 '친박연대'가 새겨진 깃발을 흔드는 인사를 보고 아연실색. 곧 이어 폭소. "박근혜와 친해요"라는 게 선거에 나선 정치세력의 슬로건이라니! 그런데 며칠 후에는 '친박연대'를 비웃기만 할 수 없었다. '친심노연대'가 진보를 자처하고 있었으니.
대중스타성을 자산으로 국회의원으로 등극한 사람은 많다. 특히 보수진영이 세를 불릴 때 그런 방법을 쓴다. 스타성으로 당선되는 것은 진보적인 방법이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기자나부랭이 인간은 "전여옥이든, 노회찬이든 상관없다. 스타성이 있는 사람에게 투자한다"라면서 전여옥 보좌관이 된 이유를 해명한 적이 있다. 내가 아는 또 어떤 인간은 당 분회장을 하네 뭐네 하다가 입을 싹 씻고 노회찬 보좌관으로 달려갔다. 아마 반드시 노회찬이어야 했을 게다. 사법연수생이 진보정당 보좌관이라면서 언론에 심심하면 오르내리던 '스타지향성' 인간이다. 난 그 두 보좌관놈들을 비슷한 부류로 보고 있다.
그런 스타성을 내세워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난 진보적이라 보지 않는다. 진보정당 국회의원은 스타가 되면 안되는가? 아니다. 진짜 스타가 되어야 한다. 진짜 스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강기갑이다.
3. 계급투표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준 강기갑
지식인들과 진보신당은 참 오락가락 별종들이다. 정책선거를 해야 한다고 피를 토하던 이들이 '민주노동당은 종북당'이라면서 네거티브 이념전을 벌였다. 비판적 지지세력은 죽을 때까지 믿을 수 없다고 혐오하던 사람들이 민주당과 후보단일화 안됐다고 마구 성을 낸다. 세련된 진보가 되야 한다면서,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민주노동당은 외연이 없어서 문제라고 했다. 외연확대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외연확대의 귀재는 민주당이다.)
심노가 텔레비전 토론으로 스타가 되어가고 있을 때 강기갑은 세련은 커녕 촌스럽게도 한복 입고 다니면서 단식투쟁이나 하고 그랬다. 심지어 분당되는 날에도 단식투쟁하고 있었다. 단식투쟁이 좋다는 게 아니다(갠적으로 단식투쟁 무지 싫어한다) 텔레비전 토론의 활약이 중요하지 않다는게 아니다(갠적으로 무지 중시한다.)
강기갑이 '건국이래 최고의 토론 달인'이었던가? 강기갑이 '지식인들도 감탄한 정책의 달인'이었던가? 강기갑이 지역구 경조사 챙기는 데 뛰어났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말한다 "강기갑은 꼭 당선되어야 할 사람이다"라고. 이건 민주노동당이니, 진보신당이니 하는 조직다툼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강기갑은 진보 양당 모두가 다시 보아야 할 모델이다. 진보신당은 말할 것도 없지만,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민중의 이해 실현을 위해 진심으로 투쟁하는 국회의원! 너무도 식상한 이 말.
"한미FTA저지투쟁을 열심히 한 강기갑"이라고 말하는 사천농민들의 모습에서 홍세화가 말한 '자기배반'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태안주민들까지 사천에 내려와서 강기갑을 당선시켜 달라고 하는 모습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진보는 집어치워야 할 게다.
4. 한나라당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보여준 강기갑
대한민국 일당독재역사를 끝낸 사람은 김대중이다. 인정한다. 독재의 일당을 극복하기 위한 김대중식 방법을 계승한 민주당 노선은 이제 파산했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갔다.
독재일당의 지역조직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직접 부딪쳐 본 사람만 안다고 할 정도이다. 친박연대니 뭐니 하면서 조직이 붕괴되었다는 것은 저들의 힘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상대는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다. 냉수먹고 다시 한번 돌아보자.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다.
돈과 힘을 가진 저들을 이기는 것은 저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민심을 얻을 때 가능하다. 저들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은 "민중의 이해를 진심으로 실현하려 투쟁하는 것"이다.
5. 강기갑을 연구하자
총선이후 진보진영의 첫 과제는 강기갑을 연구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갈라지고 진보가 다시 찬밥이 된 마당이지만 강기갑으로 됐다 강기갑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번 총선결과로 보수독재가 시작되네 어쩌네 호들갑 떨기 전에 강기갑을 연구하는 것이 이 땅의 지각있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p.s)선거투쟁으로 길을 누비며 땀 흘린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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