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를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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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도 댓글 0건 조회 1,321회 작성일 08-04-14 18:03본문
물론 일부에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주장을 하는 것을 안다. 제도만 제대로 바꿔 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는 것은 어리석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이라크의 예를 들면서, 이라크에 민주정치 제도만 도입하면 자연히 민주국가로 변할 것이란 착각들이 있었지만 오늘의 이라크는 선거를 통한 민주정부가 탄생했음에도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또 노무현 정권의 예를 들면서, 그 때도 매일 개혁을 외치며 과거사를 파헤치고 낡은 제도를 타파해 새로운 제도를 이룩하자는 등으로 5년 내내 떠들썩했지만 바꿔진 제도는 빈부 양극화만 더 심화시켰다고도 주장한다. 결국 헌법이 나빠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고, 노사 문제가 늘 꼬이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제도로 인간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며, 똑같은 제도 아래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고난을 겪는 까닭은 모두 사람 탓이라는 얘기다.
나는 이 논리에 찬성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보는 혼란상은 무엇보다 정치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제도 안에서는 아무리 선한 공자라도 일단 정치판에 들어가면 바뀌게 돼 있다. 금배지만 달면 하루아침에 사람의 팔자가 달라지는 제도 안에서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결국 다 비슷비슷하게 닮아 버리지 않으면 안 되게 돼있다.
그러니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가 항상 바닥을 친다. 그렇다고 이들이 나빠서인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이력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학력만 봐도 미국 의회 의원들보다 훨씬 높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경제면에서 세계 13번째 강대국인데 어째서 정치는 그에 비해 20년이 뒤졌다고들 하는가. 이는 바로 20년 전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제도 안에서 혼자 떠들어 봤자 잘못하면 외톨이가 된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 중 172명이 전과자이고 그 중에는 사기 미수, 마약 관련자, 특수절도 전과 5범도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미국에선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자는 아예 피선거권을 박탈당한다. 일생 동안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면장 자리에도 출마할 수 없다.
우리정치도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주민들에게 직접 심판을 받겠다는 핑계로 이미 법률적 판단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자들이 주민들에게 재심을 요구하는 건 옳지 않다. 전과범들이 금배지를 달고 활개 치는 세상을 바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둘째는 납세 문제다. 국회의원 출마자 중 겨우 절반이 작년 국민 평균납세액인 325만원 보다 많은 세금을 냈고, 10 명 중 1 명은 과거 5년 동안 전혀 세금을 낸 적이 없다고 한다. 또 10명 중 3명은 작년에 겨우 단돈10만원을 납부했고, 10명 중 4명은 세금 납부액이 1백만원이 채 안된다니 기막힌 얘기다.
세금을 안 내는 철면피들이 선량이 되겠다고 나서는 건 웃기는 일이고, 이들에게 금배지를 달아준다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다. 그러니 적어도 국민들의 평균 납세액의 절반도 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국회의원 출마자격을 주지 않는 제도가 필요하다.
다음은 남자로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후보들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병역의 의무를 기피한 후보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군대에 안 간 이유도 희한하다. 어떤 후보는 감옥에 있다 보니 병역연령이 지났다는 변명이다.
대개는 심각한 신체적 문제 때문에 병역을 면제 받은 것으로 돼있던데, 병역을 면제 받을 정도로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바쁜 국회의원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는 반드시 분명하게 밝혀서 조그마한 비리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미국은 징병제가 아니고 자원제이기 때문에 병역의무가 삭제됐다.
네 번째는 국회의원 자신들부터 달라져야 한다. 겸손하고 낮은 모습을 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국회의원이란 직업이 거만을 떠는 권력계급이 아니라 바쁜 서민들을 대변하는 머슴이란 걸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회의원들이 솔선수범해서 조그만 차로 바꿔 타야 한다.
검정색 에쿠스 대신 연료가 절약되는 소나타 같은 작은 차로 바꾸고, 주말에는 운전기사를 쓰지 말고 의원 자신이 직접 운전하는 모습을 서민들에게 보여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교통이 얼마나 복잡한지, 주차가 얼마나 어려운지 서민들이 매일 겪는 교통지옥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나도 미 의회에 있을 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다. 미국에선 국회를 “House of Representatives” 라고 부른다. Representative (대의원) 이란 뜻은 결코 특권층이 아니라, 먹고 살기 바빠 시간이 없는 주민들의 권리를 대행하는 머슴이란 뜻이다. 머슴이 대형 에쿠스 뒷자리에 앉아 거들먹거린다는 건 웃기는 얘기다.
더구나 선거 때만 지하철을 타고 재래시장을 둘러보며 악수하는 일 같은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행태는 다음 선거부터는 사라져야 한다. 이번에 어렵게 당선된 새 국회의원들은 종종 지하철도 타고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보면서 서민들의 생활상을 직접 경험하기를 바란다.
이런 일은 각 당의 윤리위원회에서 당의 정책으로 채택되면 되는 절차다. 미국 국회의원들이 우리보다 비교적 유권자들의 존중을 받는 것은 그들이 인격적으로 월등해서가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다져진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국회의원 스스로가 나서서 20년 전의 구태를 벗고 새로운 머슴의 모습으로 개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