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자주 바뀐 '충청도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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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 자주 바뀐 댓글 0건 조회 722회 작성일 08-04-15 10:28본문
역모·패륜 인물 나오면 지명 없애거나 편입시켜 충공도·청공도·청홍도…
조선에서는 역모나 패륜을 저지르면 '죄인'의 집을 부수고 그 자리를 파내 연못을 만들었다. 이 땅에 살았던 흔적조차 없애버리겠다는 전근대적 형벌이다. 이를 '파가저택'이라 했다. 재산형이면서 명예형이었다. 당시에도 파가저택은 지나치게 잔인하다 해서 국왕들도 제한적으로만 윤허했다. 우리가 알 만한 사람 중에는 광해군 때 역모에 연루됐던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1569~1618)이 능지처참당한 후에 파가저택 당했다. 그보다 더 잔혹한 형벌이 읍호(邑號)강등이다. 확대된 연좌제였다. 목(牧)을 현(縣)으로 내리는 등 행정구역의 서열을 낮추고 이름까지 바꾸는 경우도 있었으며 아예 다른 행정구역에 편입시켜 없애버리기도 했다. 해당 지역민들이 두고두고 역모자나 패륜아를 비난토록 하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도 없을 것이다. 조선 개국과 함께 양광도(楊廣道)를 분리해 양주와 광주는 경기도에 포함시키고 나머지 충주 청주 공주 홍주(지금의 홍성)를 따로 묶어 충청도(忠淸道)라고 불렀다. 문제는 충주나 청주 중에서 국사범(國事犯)이 나올 경우 그 지역은 읍호강등되기 때문에 도(道)의 이름마저 바뀌었다. 조선8도 중에서 도 이름이 가장 많이 바뀐 곳이 충청도다. '충청도의 시련'은 연산군 때 시작됐다. 연산군11년(1505년) 4월 TV 드라마 '왕과 나'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환관 김처선이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하다가 연산군에 의해 직접 살해당했다. 그때 김처선의 양자인 환관 이공신도 함께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김처선의 본향 전의를 읍호강등할 때 이공신의 본향 청주목(淸州牧)을 이웃 고을에 편입시켜 버렸다. 그 바람에 청주가 빠지고 그 자리를 공주가 차지해 '충공도(忠公道)'가 됐다. 이럴 경우 대부분 10년이 지나야 원래의 이름으로 환원되는데 충공도는 이듬해 중종반정이 일어나는 바람에 곧바로 충청도로 원위치할 수 있었다. 중종35년(1540년)에는 충주가 예성으로 강등되면서 다시 충청도는 '청공도(淸公道)'가 됐다. 다시 공주가 충주를 대신한 계수관(界首官)이 된 것이다. 계수관이란 청주 충주 공주 홍주처럼 도를 대표하는 지명을 쓸 수 있는 관아를 말한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다시 청공도가 아니라 충청도라는 지명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곧바로 '사면'이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무익하다"는 게 중종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9년 후인 명종4년(1549년) 충주목의 이홍윤이 난을 일으키자 유신현으로 강등한 다음 계수관을 충주에서 다시 홍주로 바꿔 청홍도가 됐다. 광해군 집권 초에는 충청도와 충홍도를 오가던 도명이 다시 광해군5년(1612년) 충주에서 유인발이 난을 일으키자 충주는 다시 강등되고 도명은 공청도로 바뀌었다. 인조6년(1628년)에는 괴산과 충주 일대에서 일어난 역모로 인해 충청도로 원상회복됐던 도명은 다시 공청도로 바뀌었다가 인조24년(1646년)을 전후해 홍충도, 충홍도로 개칭을 거듭했다. 내정이 그만큼 불안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효종 때와 현종 때도 각각 공홍도와 충홍도로 바꿨던 적이 있다. 숙종7년(1681년)의 일이다. 청주의 생원 박상한이 올린 기우제 제문(祭文) 가운데 역모의 뜻이 있다 하여 그는 사형당했고 청주는 서원현으로 강등됐다. 그런데 그 도에는 청풍부가 있어 그대로 공청도로 쓰다가 충풍부는 '계수관'이 아니라는 게 뒤늦게 확인돼 부랴부랴 공청도를 공홍도로 바꾸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리고 10년 후 충청도로 복귀하게 된다. 영조11년(1735년)은 특기할 만하다. 이 해 5월 충주 청주 나주 원주 등 4곳의 '계수관'에서 역모가 일어나는 바람에 충청도는 공홍도로, 전라도는 나주를 빼고 광주를 포함해 전광도로, 강원도는 원주 대신 춘천을 넣어 강춘도로 바꿨다. 정조 때에 가면 다시 공주의 심혁이 역모를 꾸몄다 하여 공충도를 홍충도로 바꾸고 강춘도도 잠시나마 원춘도로 불린다. 이후에도 충청도와 공충도(충공도)를 오갔다. 전라도의 경우 전광도나 광주 남원을 합친 광남도로 바뀐 정도이고 함경도의 경우 성종 때 영흥과 안변의 앞자를 따서 영안도로 불렸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충청도 같은 곳은 없다. '충·청·공·홍'의 '경우의 수'를 헤아려보니 12가지다. 충청도=청충도, 홍공도=공홍도임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경우가 다 있다. 조선 500년의 상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