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으면 모든 것 잃는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신뢰 댓글 0건 조회 754회 작성일 08-05-29 09:25

본문

공자의 충직한 제자로 훗날 노나라 재상이 된 자공(子貢)이 어느 날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답변했다.
 
 “백성의 양식이 넉넉하고 국방력이 튼튼하면서 백성이 믿을수 있도록 해야 잘하는 정치다.” “어쩔 수 없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맨 먼저 무엇을 버릴까요.”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군대”라고 했다.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 먼저입니까.” 다시 자공이 묻자 공자는 “양식”이라고 답했다. 논어에 실린 내용이다.
 
 다산 정약용도 ‘논어고금주’에서 “백성이 믿어 주지 않으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民不信不立)는 공자의 가르침대로 정치의 으뜸은 백성의 신뢰이지,
 
부유함이나 국방이 우선일 수는 없다고 설파했다. 백성의 신뢰야말로 통치의 기반이라는 게 성현들과 국가 흥망성쇠의 역사가 한결같이 일깨우는 가르침이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와 국정 현실은 어떠한가. 졸속적인 미국 소고기 수입 협상으로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을 대로 잃고 말았다. 국민 건강보다도 미국 축산업자의 이익만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탓이다.
 
 이로 인해 정부는 한 달이 넘도록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앞으로도 어려움이 이어질지 모른다. 미국산 소고기 개방을 입법예고하는 농식품부 장관의 수입위생조건 고시가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소고기 개방문제로 꼬일 대로 꼬인 국정의 난맥상을 돌파하기 위해 국민과의 소통을 소홀히 한 잘못을 인정했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발언도 잇달아 나왔다.
 
 하지만 앞으로 국민과 어떻게 소통하겠다는 것인지 방책을 밝히지 않았다. 모두 내 탓이라고만 강조하고 각료나 협상팀의 문제점과 책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사과가 “잘못이 별로 없다”는 말처럼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 통치자로서 잘못이 있었다면 그에 대해 확실하게 반성하고 엄정하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차후에는 이런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싶었던 게 국민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처럼 책임지는 모습이 없으니 국민 가슴속에는 여전히 응어리가 있는 듯하다.

상황이 악화된 배경이 비단 소고기 문제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일방주의적인 행태가 불쑥불쑥 돌출하곤 했다.
 
몰입식 영어교육을 밀어붙이려다 국민적 반대에 부딪혔는가 하면 도덕적 흠결이 적잖은 측근들을 자신 뜻대로 고위직에 앉혔다. 4대 강 하천 정비사업 등의 명칭으로 포장을 달리했지만 여전히 여론 수렴 절차 없이 대운하 건설을 강행하려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스스로를 대한민국의 CEO라고 자처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전문경영인으로 국민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사장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 CEO출신이라 해도 국가통치를 기업경영처럼 여겨선 곤란하다.
 
기업에서는 법 테두리 안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윤을 창출하기만 하면 된다. 설사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통행을 해도 오너가 인정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국가 경영은 그렇지 않다.
 
 견해가 다른 사람의 비판과 여론도 충분히 살핀 뒤 최대공약수를 찾아내 고차원적인 전략과 비전으로 설득과 이해를 꾀해야 한다.

취임 100일도 채 안된 시점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쳤다. 헌정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지지율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와 국무위원들까지도 국민의 신뢰 부족으로 빚어진 난맥상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섬기겠다’ ‘모시겠다’는 대통령의 발언만으로 만족할 국민은 별로 없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은 일방통행을 되풀이하는 CEO를 원하지 않는다. 오너의 의견을 무시하고 신뢰를 받지 못하면 CEO에게 어떤 결과가 닥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