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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앗아간 문화유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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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화유산 댓글 0건 조회 623회 작성일 08-02-1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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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서울성곽의 남대문인 숭례문이 화마에 잿더미로 변했다. 이에 앞서 2005년에는 낙산사가 불바다가 되었다.
 
이런 참사 때마다 정부나 국민 여론 모두 획기적인 문화유산 방재(防災)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부르짖었지만 이내 잊혀지고 같은 사고가 되풀이 돼왔다.
 
 이에 화마가 앗아간 문화유산은 어떤 것들이 있고,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의 문제점과 재앙을 막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를 3회에 걸쳐 정리한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나라현(奈良縣)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인 호류지(法隆寺)의 5층 목탑인 오중탑(五重塔)으로 알려져 있었다.
 
일본서기나 일본 고대 금석문인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의 광배명(光背銘), 호류지 창건에 관한 사연을 기록한 문헌인 '법륭사가람연기병유기자재장'(法隆寺伽藍緣起幷流記資財帳)과 같은 기록들에 의하면
 
 이 사찰은 추고천황(推古天皇) 15년인 607년 천황과 성덕태자(聖德太子)가 건립했다고 한다. 따라서 목탑 또한 이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지만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 호류지는 천지천황(天智天皇) 9년인 670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에 주목한 연구자들은 현재의 오중탑이 화재 사건 이후 재건된 것이라는 견해를 강하게 피력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목탑에 사용된 나무의 나이테 연대를 측정한 결과 594년에 벌채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고 목조건축물은 산시성 우타이산(五臺山) 기슭에 위치한 남선사(南禪寺)라는 사찰의 대웅전(782년)과 인근 지역 불광사(佛光寺)의 대웅전(857년)이 꼽힌다.
 
중국 학계에서는 이들 목조건축물을 최근 재조사한 결과 남선사 대웅전의 창건 연대가 호류지 오중탑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발표했다.
 
그 실상이야 어떻든 목조건축물인 호류지 목탑이나 남선사 및 불광사 대웅전이 1천 년을 넘기면서 현재까지 전해진다는 점은 "기적"이라고 고건축 학자인 김홍식 명지대 교수는 말했다.
 
이는 그만큼 목조건축물이 화재나 지진과 같은 각종 재해에 노출될 위험성이 큰 데다, 무엇보다 목재 자체가 좀처럼 1천년을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백년 혹은 천년 이상을 버텨오던 목조건축물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일은 역사상 허다하게 발견된다.
 
서울성곽 남대문이자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이 겪은 것과 같은 비극으로서 20세기 들어 세계 문화유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은 호류지 금당(金堂) 화재가 있다.
 
1949년 1월26일 발생한 화재로 일본 국보인 이곳 12면 벽화(十二面壁畵) 대부분이 소실됐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는 벽화의 소실은 한국에도 일대 충격을 주었다.
 
한데 이내 밝혀진 화재 원인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벽화 모사 작업을 하던 어떤 연구원이 보온용 전기담요의 스위치를 끄는 일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다. 화재 발생 이틀 전에 호류지에 사는 어떤 부인에게 독을 넣은 과자가 배달된 일이 있는 점을 주목해 사찰 내부 분란에 의한 방화라는 설명이 그것이다.
 
화재 원인이야 어떻든 오중탑과 함께 천년 이상을 버틴 금당은 일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것이다.
 
일본의 충격은 이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인 1950년 7월2일 오전 2시경 교토시 긴카쿠지(金閣寺)라는 사찰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일본 국보 목조건축물인 금각(金閣) 역시 화재로 46평 전체가 불타 내리고 말았다.
 
이내 체포된 방화범은 이 사찰 도제(徒弟.학승)인 하야시 쇼켄(林承賢)으로 밝혀졌다. 당시 21세에 불과한 그는 실연으로 홧김에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관광객에게도 교토 코스에서는 빠지는 법이 없는 금빛 찬란한 이곳 금각은 1955년에 재건된 것이며 원래의 모습은 아니다.
 
한국사에서 목조건축물의 최대 피해 사례로는 황룡사 목탑이 꼽힌다.
 
선덕여왕 12년(643) 자장 법사의 건의로 완공된 총높이 90m에 이르는 이 거탑은 잦은 지진 피해와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질긴 생명력을 자랑했으나, 1238년 몽고군에 의해 일순간에 잿더미가 됐다.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 또한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고종 시대에 흥선대원군에 의해 겨우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5년 4월5일 식목일 산불에 막대한 피해를 본 강원 양양 낙산사라든가, 지금의 숭례문을 제외하고라도 20-21세기 한국 문화유산계에는 그에 버금갈 만한 대형 사고가 적지 않았다.
 
큰 참사로는 전남 화순군 쌍봉사 대웅전 소실을 들 수 있다. 1690년에 건립된 이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과 더불어 목조탑 형식을 한 특이한 건축물이란 점에서 보물 163호로 지정되었으나
 
1984년 4월3일 한 신도가 사용한 촛불로 화재가 일어나 전소되었다. 현재의 대웅전은 1986년 12월에 복원한 것이다. 원형을 잃어버린 대웅전은 보물 타이틀을 반납해야 했다.
 
1986년 12월6일에 발생한 전북 김제군 금산사 대적광전 화재 또한 한국 문화재사의 대참사로 기록된다. 이로 인해 대적광전은 보물 476호라는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현재의 대적광전 또한 중건한 것이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40여년간 목조건축물 현장을 누빈 윤흥로 문화재위원은 "법주사 팔상전이 기도용 촛불 때문에 불탈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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