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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조계 댓글 1건 조회 5,378회 작성일 19-09-04 10:31본문
[이범준의 저스티스] 노무현의 실패, 문재인의 위기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입력 : 2019.09.04 06:00 수정 : 2019.09.04 07:59
이 나라 주류는 보수이고 그 중심에 법조가 있다. 이 법조에서 대통령을 두 번 냈는데 노무현과 문재인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 가장 강하게 반발한 그룹이 법조다. 경기고는커녕 그 흔한 서울대 출신도 아닌 고졸의 노무현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나이도 많은 상고 출신이 떡하니 연수원 교실 가운데 앉아서 말이야….” 수십년 전 기억까지 끌어다 미워했다. 합격자가 겨우 60명이던 시절 사법시험에 붙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법시험 합격은 법조에서 시민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검찰에 불려 다니다가 목숨을 끊자, 얼음장 같은 말로 조소하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험과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 법조다. 경기고를 졸업해도 서울대에 붙지 못하면 소용이 없고, 같은 서울대라도 법학과를 졸업해야 한다. 이런 잣대의 최정점에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이 있다. 더 이상 수험생이 아닌 예비 법조인을 상대로 고도의 논리력과 분석력을 강도 높게 검증한다. 머리 좋은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렇게 나오는 연수원 순위이기에 서로들 인정한다. 목포상고 출신에 성균관대 야간대학을 졸업한 연수원 5기 수석이 김오수 변호사다. 연수원 수석인 그를 상고 출신이라거나, 야간대학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이런 수석들 가운데서도 우수하다는 사람이 12기 김용덕 전 대법관이다. 자신의 능력을 지난 35년 법관 생활로 입증했다.
김 전 대법관이 수석이던 해 차석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1980년 4월 학생시위를 주도하면서 2차 시 험을 치렀고 유치장에서 합격했다. 연수원 순위에 합산되는 사법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연수원 시 험만으로는 문재인이 수석이라는 얘기도 있다. 김용덕보다 우수한 사람이 문재인 아니냐고 하면, 법조인 누구도 대꾸하지 못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에게도 문재인 같은 친구가 있다”고 한 데는 이런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 대통령이 법원개혁의 적임자로 택한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김명수 춘천법원장이다. 김 대법원장을 임명한 것 자체가 개혁이고 성.적과 같은 낡은 틀을 부순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개혁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최근 사법행정자문회의라는 기구를 대법원이 만들었다. 민변에서는 “개혁안이라 부르기 어려우니 철회하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핵심인 법원행정처 개혁안을 만들라고 지난해 10월 지시했다. 이에 법원 내부독재를 막으려면 외부인사가 과반인 기구가 법원행정처를 대체해야 한다고 사법발전위원회 추진단이 건의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처를 사실상 부활하는 방안을 밀어붙였다. 이 부활안은 추진단이 생기기 전인 같은 해 8월에 법원행정처가 만든 비밀문건임이 경향신문 보도로 드러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비밀문건대로 추진했고, 이것이 민변도 반대하는 사법행정자문회의다.
왜 이런 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법조장악 조건을 갖춘 듯 보이는 문재인 정권에서 벌어질까. 흔히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이 쉽게 구분되지 않고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는 곳이 법조이기 때문이다. 당장 사법농단 사건을 주도한 판사들 상당수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고, 법원행정처 권력화는 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작품이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이용훈 대법원과 양승태 대법원은 다르지 않다. 이들끼리 누구는 진보이고 누구는 보수라고 말해 정권의 신임을 돌아가며 얻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화에 헌신했다고, 문 대통령이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법조라는 거대한 집단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조에는 단단하고 치밀한 자기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요즘 법원의 권위 회복을 호소하는 판사들이 양승태 대법원을 무너뜨린 사람들이다. 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대통령이라도 쉽게 장악하지 못하는 곳이다. 지난해 사법발전위원회 추진단이 사법독재를 극복한 유럽처럼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 감시에 관여하는 방식이 우리에게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관 대다수의 뜻을 내세워 거부했다. 실제로 법관 다수가 시민의 통제를 거부한다. 이 무렵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추진할 법무장관에 조국 서울대 교수를 지명했다. 지금은 금수저의 상징이 되어 있지만 진짜 금수저가 수두룩한 법조에서는 사법시험 출신도 아니지 않으냐는 말부터 나왔다.
조국 후보자가 금수저들의 실상을 드러내며 위기에 몰리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착수했다. 청문회가 무산되자 다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그로기로 몰고 있다. 이제 조국 후보자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검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검찰이 정치를 주도하고 흔들지 못하게 만들자는 것이 조국 후보자의 신념이었다.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마저 법원개혁과 검찰개혁에 실패한다면 당분간 희망은 없다고 봐야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040600005&code=990100#csidx19c704413e635b99c6a1b08a0eba00a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입력 : 2019.09.04 06:00 수정 : 2019.09.04 07:59
이 나라 주류는 보수이고 그 중심에 법조가 있다. 이 법조에서 대통령을 두 번 냈는데 노무현과 문재인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 가장 강하게 반발한 그룹이 법조다. 경기고는커녕 그 흔한 서울대 출신도 아닌 고졸의 노무현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나이도 많은 상고 출신이 떡하니 연수원 교실 가운데 앉아서 말이야….” 수십년 전 기억까지 끌어다 미워했다. 합격자가 겨우 60명이던 시절 사법시험에 붙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법시험 합격은 법조에서 시민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검찰에 불려 다니다가 목숨을 끊자, 얼음장 같은 말로 조소하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험과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 법조다. 경기고를 졸업해도 서울대에 붙지 못하면 소용이 없고, 같은 서울대라도 법학과를 졸업해야 한다. 이런 잣대의 최정점에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이 있다. 더 이상 수험생이 아닌 예비 법조인을 상대로 고도의 논리력과 분석력을 강도 높게 검증한다. 머리 좋은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렇게 나오는 연수원 순위이기에 서로들 인정한다. 목포상고 출신에 성균관대 야간대학을 졸업한 연수원 5기 수석이 김오수 변호사다. 연수원 수석인 그를 상고 출신이라거나, 야간대학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이런 수석들 가운데서도 우수하다는 사람이 12기 김용덕 전 대법관이다. 자신의 능력을 지난 35년 법관 생활로 입증했다.
김 전 대법관이 수석이던 해 차석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1980년 4월 학생시위를 주도하면서 2차 시 험을 치렀고 유치장에서 합격했다. 연수원 순위에 합산되는 사법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연수원 시 험만으로는 문재인이 수석이라는 얘기도 있다. 김용덕보다 우수한 사람이 문재인 아니냐고 하면, 법조인 누구도 대꾸하지 못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에게도 문재인 같은 친구가 있다”고 한 데는 이런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 대통령이 법원개혁의 적임자로 택한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김명수 춘천법원장이다. 김 대법원장을 임명한 것 자체가 개혁이고 성.적과 같은 낡은 틀을 부순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개혁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최근 사법행정자문회의라는 기구를 대법원이 만들었다. 민변에서는 “개혁안이라 부르기 어려우니 철회하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핵심인 법원행정처 개혁안을 만들라고 지난해 10월 지시했다. 이에 법원 내부독재를 막으려면 외부인사가 과반인 기구가 법원행정처를 대체해야 한다고 사법발전위원회 추진단이 건의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 의견을 무시하고 행정처를 사실상 부활하는 방안을 밀어붙였다. 이 부활안은 추진단이 생기기 전인 같은 해 8월에 법원행정처가 만든 비밀문건임이 경향신문 보도로 드러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비밀문건대로 추진했고, 이것이 민변도 반대하는 사법행정자문회의다.
왜 이런 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법조장악 조건을 갖춘 듯 보이는 문재인 정권에서 벌어질까. 흔히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이 쉽게 구분되지 않고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는 곳이 법조이기 때문이다. 당장 사법농단 사건을 주도한 판사들 상당수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고, 법원행정처 권력화는 노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작품이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이용훈 대법원과 양승태 대법원은 다르지 않다. 이들끼리 누구는 진보이고 누구는 보수라고 말해 정권의 신임을 돌아가며 얻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이 민주화에 헌신했다고, 문 대통령이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법조라는 거대한 집단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조에는 단단하고 치밀한 자기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요즘 법원의 권위 회복을 호소하는 판사들이 양승태 대법원을 무너뜨린 사람들이다. 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대통령이라도 쉽게 장악하지 못하는 곳이다. 지난해 사법발전위원회 추진단이 사법독재를 극복한 유럽처럼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 감시에 관여하는 방식이 우리에게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관 대다수의 뜻을 내세워 거부했다. 실제로 법관 다수가 시민의 통제를 거부한다. 이 무렵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추진할 법무장관에 조국 서울대 교수를 지명했다. 지금은 금수저의 상징이 되어 있지만 진짜 금수저가 수두룩한 법조에서는 사법시험 출신도 아니지 않으냐는 말부터 나왔다.
조국 후보자가 금수저들의 실상을 드러내며 위기에 몰리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착수했다. 청문회가 무산되자 다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그로기로 몰고 있다. 이제 조국 후보자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검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검찰이 정치를 주도하고 흔들지 못하게 만들자는 것이 조국 후보자의 신념이었다.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마저 법원개혁과 검찰개혁에 실패한다면 당분간 희망은 없다고 봐야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040600005&code=990100#csidx19c704413e635b99c6a1b08a0eba0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