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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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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버스 댓글 0건 조회 630회 작성일 09-06-1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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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이 얼마나 옹졸한 소시민인지 깨닫게 해주는 물건이나 상황들이 있다. 나의 경우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버스가 그렇다.
 
경기도 일산 신도시와 서울을 오가는 빨간색 광역버스인데, 차 타는 시간만 1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그러니 서서 가는 고역만큼은 어떻게든 면하고 싶다.
 
출근길, 버스에 올라 요행히 빈자리가 보이면 운수대통이다. 그러나 이미 자리가 꽉 찬 버스라면 내 위치를 잘 선택해야 한다. 누가 도중에 일찍 내릴 승객인지 나름대로 점찍어 그 앞에 자리 잡는 것이다.

행색으로 보아 몇 정류장이면 하차할 사람이라고 판단했는데 광화문을 지나도록 자리에 눌러앉아 있으면 내 한심한 판단력을 자책하게 된다. 부득부득 앉아 가려는 욕심에 휘둘린 자신의 군색함·초라함에 낯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나보다 늦게 버스에 탔는데 운 좋게 먼저 자리를 잡은 승객들을 시샘하고, ‘이건 사회정의에 어긋나’라며 번지수 틀린 정의감까지 발동한다. 버스를 타는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받아 빈자리가 나면 번호순으로 앉도록 교통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적도 있다.

서울의 시내버스는 올해 환갑이다. 1949년 버스 273대가 사업면허를 받아 시동을 걸었다고 한다. 나는 77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지방에서 상경해 처음 경험한 서울 버스의 추억이 지금도 새롭다.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내려 95번 버스에 탔다. 신림동까지 1시간 반 이상 걸렸다. 요금은 25원. “서울 물가가 무척 싸더라. 한 시간 반이나 탔는데 25원만 받더라”고 소감을 말했더니 다들 실소를 했다.
 
싼 게 아니라 서울이 그만큼 넓디넓은 ‘교통지옥’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때 승용차를 몰기도 했고 가끔 택시도 타지만 버스는 여전히 나의 주된 교통수단이다.
 
현재 서울의 시내버스는 68개 회사에 7600여 대나 된다. 하루 500만 명이 이용한다. 경기도에 적을 둔 광역버스를 합치면 숫자가 훨씬 늘어난다.

버스 승객 중에는 나처럼 잔머리 굴려가며 빈자리를 노리는 ‘옹졸한 소시민’도 많겠지만, 김용택 시인처럼 버스를 ‘도 닦는’ 장소로 활용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버스를 탔을 때 앉아서 가야겠다고 맘을 먹은 사람은 그 순간부터 자리만 보이겠지요.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 자리를 차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서 적대감은 아니라도 서운한 생각은 하겠지요… 나는 일찍부터 자리에 앉겠다는 생각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지요. 마음이 편해지고 자유로워지니,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자세히 보였습니다’(김용택 ‘바로 내가, 바로 당신이 희망입니다’).

그러고 보면 버스에는 이 땅의 정치학·경제학·사회학이 다 녹아 있다. 소시민의 자괴감에서 시인의 인간애에 이르는 심리학도 들어 있다. 버스 요금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이슈다.
 
정치인은 가끔 버스 요금을 몰라 망신당한다. 지금은 사라진 버스안내양은 대한민국 노동애사(哀史)의 한 장을 차지한다. 77년 한 버스회사의 44평(약 145㎡)짜리 안내양 숙소에는 무려 221명이 기거해 국회에서도 문제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버스 준공영제·전용차로제를 과감히 도입해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진보 진영도 재작년 대선 패배 후 ‘우리가 공허한 담론에 빠져 있을 때 MB(이명박)는 버스·청계천 등 실질적 성과물을 바탕으로 민심을 샀다’고 반성하지 않았던가.
 
요즘 경기도 버스에는 ‘1년에 최대 50만원을 돌려 드립니다’라는 환승 요금할인 제도 홍보 문구가 나붙어 있다. 도지사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자랑일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 후퇴론(論)’을 둘러싼 작금의 논란이 참 공소(空疏)하다고 느낀다. 안 그래도 허업(虛業)이란 소리를 듣는 정치를 한층 허하게 만드는 논쟁이다. 차라리 버스를 잡아라.
 
버스의 정치학, 버스의 사회학을 제대로 따지고 공부하는 게 표를 위해서도 훨씬 낫지 않을까. 누가 진짜로 국민을 위하는지 아마 버스는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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